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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무알도(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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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로무알도 (Romuald)
축일 6월 1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은수자, 설립자, 수도원장
활동지역
활동연도 +1027년
같은이름 로무알두스, 로무알드
성인 기본정보

   성 로무알두스(Romualdus, 또는 로무알도)는 951년경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Ravenna)에서 유서 깊은 오네스티(Onesti)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풍족한 집안에서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며 세속적인 쾌락에 몰두하기도 했으나 점점 하느님을 향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972년 그가 20살 무렵이 되었을 때 성격이 급한 그의 아버지가 친척과 토지를 둘러싼 분쟁 중에 결투를 신청했고, 아들에게도 결투에 참여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그의 아버지는 결투 끝에 친척을 죽이고 말았다. 성 로무알도는 아버지의 살인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로마제국 시대 라벤나의 옛 항구도시인 클라세(Classe)에 있는 성 아폴리나레(Sant’Apollinare)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들어가 40일을 지냈다. 그리고 완전히 회심을 체험하며 세상을 떠나 온전히 수도 생활에 정진하고자 입회를 결심하였다. 당시 산 아폴리나레 수도원은 클뤼니 개혁을 받아들였지만, 더 엄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성 로무알도가 보기에는 너무나 느슨하고 방만한 분위기였다. 그의 조언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심지어 미움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수도원에서 3년을 보낸 후 성 로무알도는 보다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자 장상의 허가를 받고 수도원을 떠나 베네치아(Venezia) 교외에 살던 마리누스(Marinus)라는 은수자의 제자가 되어 대단히 엄격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978년경 전임자의 살해를 묵인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인 도제(Doge)가 된 성 베드로 우르세올로(Petrus Urseolus, 1월 10일)는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 쿡사(Cuxa)의 성 미카엘 수도원 원장인 구아리누스(Guarinus)와 마리누스 은수자 그리고 성 로무알도의 조언을 받아들여 모든 직위를 내려놓고 가족을 떠나 그들과 함께 쿡사로 피신해 수도승이 되었다. 성 로무알도와 마리누스는 수도원장의 권고대로 수도원 가까운 곳에 은둔소를 짓고 10년가량 공주(共住) 생활과 엄격한 은수 생활을 병행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성 로무알도는 쿡사 수도원의 도서관을 활용해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익히며 동시에 자신만의 수도 생활 신학을 만들어갔다.

   그는 사막 교부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 당대의 수도원 생활에 독거 은수 생활의 전통을 도입하고자 했다. 그는 이탈리아 여러 곳을 다니며 수도원을 설립하고 재건하는데 헌신하다가 994년경 아버지가 회개하고 수도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 라벤나로 돌아왔다. 998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오토 3세(Otto III)는 성 로무알도를 설득해 공석으로 있던 성 아폴리나레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하지만 그의 수도원 개혁에 반감을 품고 저항하는 수도승들의 뜻을 알고는 이듬해에 수도원장직을 사임하고 다시 이탈리아 북부와 피레네산맥을 방랑하며 은수 생활과 수도원 설립을 도왔다. 그가 라벤나에 머무는 동안 황제의 요청으로 수도승들을 폴란드와 보헤미아 지방 선교사로 파견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궁정 사제로 황제와 동행하던 퀘르푸르트(Querfurt)의 성 브루노(Bruno, 3월 9일)는 그의 제자가 되어 엄격한 금욕생활을 실천했고, 나중에 프로이센(Preussen) 사람들에 대한 선교 사업에 헌신하다가 순교하여 프라하(Prague)의 성 아달베르트(Adalbert, 4월 23일)에 이어 ‘제2의 프로이센의 사도’로도 불리고 있다.

   1012년에 토스카나(Toscana) 지방 아레초(Arezzo)에 도착한 성 로무알도는 말돌루스(Maldolus)라는 사람에게 약간의 땅을 기증받았다. 전설에 따르면 말돌루스는 하얀 수도복을 입고 천국으로 올라가는 수도자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고 한다. 성 로무알도는 아레초 교구장의 승인을 받고 ‘말돌루스의 땅(Campus Maldoli)’에 다섯 개의 은둔소를 마련했는데, 이 은둔소들은 나중에 카말돌리회(Camaldoli)로 불리게 되었다. 성 로무알도는 그동안 준비하고 시행했던 수도 생활 규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가 생각한 수도 생활은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근간으로 하면서 수도원에서 지내는 공주 수도 생활과 은둔소에서 지내는 독거 은수 생활이 조화를 이루는 형태였다. 독거 은수자들은 각자의 은수처에서 지내지만 정해진 시간에 공동체와 함께 모여 기도와 미사 전례 참여하였다. 이렇게 해서 카말돌리회가 시작되었다. 그의 수도원 개혁 정신은 라벤나 출신으로 나중에 주교이자 추기경이 된 성 베드로 다미아니(Petrus Damiani, 2월 21일)를 통해 계속 이어졌다.

   성 로무알도는 1027년 6월 19일 마르케(Marche) 지방 파브리아노(Fabriano) 근처에 자신이 설립한 발 디 카스트로(Val di Castro) 수도원의 은수처에서 고독과 침묵 속에 평화롭게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1032년에 그의 무덤 위에 제단을 짓는 것이 허용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고, 1042년에는 그의 제자인 성 베드로 다미아니가 “로무알도의 생애”(Vita beati Romualdi)를 저술하여 그의 삶과 정신을 널리 알렸다. 그 후에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나자 1481년 2월 7일 성 로무알도의 유해를 파브리아노의 성 비아지오(San Viagio)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그래서 이 성당은 나중에 성 비아지오와 성 로무알도(Santi Biagio et Romualdo) 성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595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는 그를 성인품에 올리며 그의 축일을 기존의 6월 19일에서 유해 이장일인 2월 7일에 기념하도록 변경하였다.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에는 다시 선종한 날인 6월 1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7일과 6월 19일 목록에서 성 로무알도에 대해 전해주었다. 즉, 라벤나 출신의 성 로무알도는 카말돌리회의 설립자이자 은수자로서 당대 이탈리아의 느슨했던 수도원 규율을 회복하고 널리 확대하는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9일 목록에서 카말돌리회의 은수자이자 수도승들의 아버지인 성 로무알도는 원래 라벤나 출신이었으나 은수자의 삶과 규율을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작은 수도원을 짓고 모든 곳의 수도승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마침내 마르케의 발 디 카스트로 수도원에서 행복한 삶을 마쳤다고 기록하였다. 성 로무알도는 ‘라벤나의 성 로무알도’ 또는 ‘카말돌리의 성 로무알도’로도 불린다. 그리고 교회 미술에서 그는 흰 수도복을 입고 긴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로무알도 아바스',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69-173쪽.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 - '성 로무알도와 카말돌리회', 서울(성바오로), 2002년, 78-82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로무알도 아빠스', 서울(성바오로), 2002년, 143-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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