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성 루카스(Lucas, 또는 루카)는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 ·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 · 리옹의 성 이레네오(Irenaeus, 6월 28일) 등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연안의 안타키아[Antaky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다(콜로 4,14). 성 스테파노(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런 도시 중 하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를 파견했고, 성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있던 성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성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고 특별히 성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 같다. 그는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고,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한 후 성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듯하다. 그는 성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도,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다(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Maria)를 찾아뵙고 주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성모 마리아를 직접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성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써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주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묘사해 주었다(루카 1-2장). 성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티나 밖에서 80년 전후에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에 따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Theo-philos)을 뜻하는 ‘테오필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전해 들은 이들이나 입문자가 더욱 확고한 신앙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복음사가 성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63년경 사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수인으로 생활하며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다. 전반부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그리고 후반부는 사도 성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성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성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따라서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 루카 복음사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사도 성 바오로를 위한 희생과 충직함을 상징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8일 목록에서 복음사가인 성 루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성령으로 충만해 비티니아(Bithynia,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옛 이름)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의 유해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옮겨졌고, 다시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로 이장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의사이자 복음서 저자인 성 루카가 안티오키아의 이교도 가정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개종했고, 사도 성 바오로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어 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침을 주의 깊게 정리했으며,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 생활의 시작부터 사도 바오로가 로마에 처음 머물 때까지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지닌 기록자로서 생활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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