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디누스 레알리노(Bernardinus Realino, 또는 베르나르디노 레알리노)는 1530년 12월 1일 이탈리아의 모데나(Modena) 인근 카르피(Carpi)에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부족함 없는 환경 속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수학했다. 그리고 1548년 볼료냐(Bologna) 대학에 들어가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다가 사회적으로 성공이 보장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1556년 학위를 받은 그는 밀라노 추기경의 추천과 가족의 지원을 받아 펠리차노(Felizzano) 시의 시장 겸 시 법원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시장과 판사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은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지만, 종종 삶의 허무함을 느끼곤 했다. 1564년 그는 나폴리(Napoli) 귀족의 고문 변호관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그때 그곳에서 예수회와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나폴리의 예수회 성당에서 설교를 듣고 감동한 성 베르나르디누스 레알리노는 사제에게 총고해를 하고 8일 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피정 중에 주님의 특별한 은총과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한 후 예수회 입회를 결심하였다. 모두가 그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수도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예수회를 창설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의 초기 동반자 중 한 명인 알폰소 살메론(Alfonso Salmeron) 신부로부터 나폴리에서 수련을 받았다. 그는 첫서원을 하고 채 1년도 되지 않은 1567년 5월 24일 사제품을 받고 나폴리 수련소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나폴리에 있는 동안 자신의 소임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교리교육과 설교 그리고 고해성사에 최선을 다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이를 찾아 돌보고, 교도소를 자주 방문해 수감자들을 위로하며 그들의 회심을 위해 노력했다. 놀라운 성덕과 설교로 나폴리에서 큰 성과를 거둔 그는 1574년 이탈리아 동남부 아풀리아(Apulia) 지방의 레체(Lecce)라는 도시에 예수회 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책임자로 파견되었다. 그 후 그는 선종할 때까지 42년간 레체에서 사목활동을 수행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 레알리노 신부는 설교와 고해성사를 통해 많은 이들을 회심으로 인도했고, 그의 기도로써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는 사망하기 6년 전에 넘어져서 다친 곳의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아 고생했다. 1616년 6월 중병으로 입원한 그는 7월 2일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성모 마리아를 부르며 숨을 거두었다. 임종을 지키러 온 레체 시장은 그에게 천국에 가서 레체 시의 수호성인 되어 줄 것을 특별히 부탁했다. 그는 1895년 9월 27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47년 6월 22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오른 후 레체 시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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