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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베르트란(10.9)

루도비코 베르트란(10.9)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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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루도비코 베르트란 (Louis Bertrand)
축일 10월 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설교가, 선교사
활동지역
활동연도 1526-1581년
같은이름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버트런, 베르트란도, 베르트란두스, 베르트랑, 벨트란
성인 기본정보

   성 루도비쿠스 베르트란(Ludovicus Bertran, 또는 루도비코 베르트란)은 1526년 1월 1일 에스파냐의 발렌시아(Valencia)에서 공증인인 루이스 베르트란(Luis Bertran)과 앙겔라 에익사크(Angela Eixarch)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동향 출신으로 도미니코 수도회의 신부이자 친척으로서 성인품에 오른 성 빈첸시오 페레르(Vincentius Ferrer, 4월 5일)가 175년 전에 세례를 받은 같은 성당, 같은 세례대에서 태어나서 바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고 기도를 좋아했던 그는 젊은 시절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순례를 떠났다. 그리고 18살이 된 1544년 8월 26일 발렌시아의 성 도미니코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1547년 발렌시아의 대주교인 빌라노바(Villanova)의 성 토마스(Thomas, 9월 8일)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수련장으로 임명되어 거의 30여 년을 역임할 정도로 수도회의 엄격한 규율과 정신을 충실히 지키며 체득해나갔다.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은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영적인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1557년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 그녀가 추진하는 맨발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 운동을 적극적으로 격려했고, 그해에 페스트가 발렌시아에 만연하자 감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영웅적인 구호 활동을 펼쳤다. 당시 에스파냐는 국운이 가장 강대하던 때로 신대륙에 활발히 진출했고, 여러 수도회에서도 선교사 파견에 적극적이었다.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 역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로 파견되길 간절히 원했다. 마침내 그의 뜻이 이루어져 1562년 선교사로서 라틴 아메리카의 콜롬비아로 가게 되었다. 이미 자신의 수도회가 진출해 있던 콜롬비아 북부의 항구도시인 카르타헤나(Cartagena)에 도착한 그는 콜롬비아와 파나마를 거쳐 서인도제도의 세인트 빈센트(Saint Vincent)와 세인트 토마스(Saint Thomas)까지 가서 원시림을 맨발로 다니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 수많은 원주민에게 세례를 주었다.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통역사를 통해 복음을 전해야 했고, 그리스도교와 정복자들을 적대적으로 보았던 인디언들은 뱀을 이용해 그를 독살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그는 정복자인 동포들의 탐욕과 악행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최초의 선교사 중 한 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상인들과 권력자들의 사주를 받은 괴한으로부터 여러 차례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한번은 괴한이 총으로 그를 해치려 했을 때 십자성호를 긋자 총구 부분이 십자가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 무사할 수 있었다. 이렇듯 그의 거룩한 삶에서 나오는 기적과 예언 그리고 모범적인 삶은 그가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569년에 그는 에스파냐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세비야(Sevilla)에 도착한 후 발렌시아로 갔다. 그는 발렌시아 근처에 있는 성 오누프리오(Onuphrius)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고행과 설교에 전념하며 남미 선교를 위한 선교사 양성에 힘쓰고, 많은 이들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동했다. 그 후로도 발렌시아에서 몇몇 수도원의 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한동안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의 영적 지도자로서 서신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자신을 정화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1580년 사순절에 발렌시아 주교좌 대성당에서 설교하던 중 졸도한 후 그 길로 병석에 누워 약 18개월 정도 극심한 고통을 겪고 나서 1581년 10월 9일 선종하여 그 도시의 성 스테파노 성당에 묻혔다. 그의 유해는 안타깝게도 1936년 에스파냐 내전 중에 파괴되었다고 한다.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은 1608년 7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 1655~1667년 재위)는 그를 오늘날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에 걸쳐 있었던 스페인령 그라나다 신왕국(New Kingdom of Granada)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이어서 1671년 4월 12일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가 그를 성인품에 올렸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9일 목록에서 에스파냐 발렌시아의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이 설교자회의 사제로서 사도적 정신으로 충만해 자신의 순수한 삶과 많은 기적을 통해 그가 아메리카에서 전파한 복음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고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에스파냐 발렌시아 출신의 설교자회 사제인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이 남미의 다양한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그들을 압제자로부터 보호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은 에스파냐에서 루이스 벨트란(Luis Beltran) 또는 루이스 베르트란(Luis Bertran)으로 불린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루도비코 베르트랑 증거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196-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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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도비코 베르트 ...] 성 루도비코 베르트란도: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복음화에 앞장 주호식 2010/10/05 3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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