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론은 4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튀르키예와 접경 지역인 시리아 북서부의 고대 도시인 키루스(Cyrrhus)와 아파메아(Apamea, 오늘날의 칼라트 알-마디크[Qalaat al-Madiq]) 근처 오론테스강(Orontes R.) 기슭의 산에서 은수자로 생활했다. 그는 뜨거운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염소 가죽으로 덮인 움막을 갖고 있었지만, 꼭 필요한 때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야외에서 생활했다. 그는 많은 수도승의 영적 스승으로 알려진 성 제비노(Zebinus, 2월 23일)의 충실한 제자였다. 성 제비노는 제자들이 하느님과 대화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매우 간결하게 조언해 주곤 했다. 성 마론은 근처에서 폐허가 된 이교 사원을 발견해 그곳을 유일신 하느님께 기도하는 장소로 봉헌하였다. 그에게 조언과 자문을 얻고자 많은 이들이 찾아왔고, 성 마론은 그들을 정중히 환대하며 함께 기도할 것을 권유했는데, 기도 중에는 종종 밤새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성 마론은 5세기 초에 사제품을 받았고,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놀라운 신체적 · 정신적 치유를 이루었으나 영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명성도 그에 못지않게 널리 퍼져나갔다. 그래서 많은 제자가 몰려들어 수도승이나 은수자가 되었는데, 나중에 키루스의 주교가 된 역사가 테오도레트(Theodoret)는 자신의 교구에 있는 수도승 대부분이 성 마론에게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또한 테오도레트는 의사들이 각각의 질병에 대해 다른 약을 처방하지만, 성 마론은 모든 이에게 같은 약을 처방했는데, 그것은 ‘기도’였다고 했다. 또한 그는 육체의 질병만 치료하지 않고 영혼의 질병도 치료했다. 어떤 사람은 탐욕에서, 어떤 사람은 분노에서 치료했고, 어떤 사람에게는 절제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정의를 가르쳤다고 증언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도 그를 지극히 존경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성 마론은 보통 선 채로 기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지팡이에 자신의 몸을 의지해 기도하였다. 그는 423년경 오랜 금욕 생활로 병을 얻어 선종한 후 오론테스강 상류, 오늘날 레바논에 속한 베이트 마룬(Beit Maroun) 수도원에 묻혔다. 그리고 그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성 마론이 선종한 후 그의 제자에 의해 스승의 이름을 딴 동방 정교회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시작되었는데, 그리스도 단의론(~單意論, Monotheletismus)을 주장해 정교회에서 분리되었고, 680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받기도 했다. 그러나 1182년 십자군 전쟁 이후 마론파(Maronites)는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오늘날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티나 등지에서 시리아어로 된 고유 전례를 사용하며 활동하고 있다.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Gergorius XIII)는 로마에 마론파 대학을 설립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9일 목록에서 시리아의 아파메아 근처 산에서 엄격한 고행과 묵상에 전념한 은수자 성 마론이 있었고, 그의 무덤 근처에 유명한 수도원이 세워졌으며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가톨릭교회와 마론파에서는 2월 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나 동방 정교회에서는 2월 14일에 기념하고 있다. 그는 성 마로(Maro)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