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는 1647년 6월 22일 프랑스 샤롤레(Charolais) 지방 베로브르(Verosvre)의 로트쿠르(Lauthecourt)에서 클로드 알라코크(Claude Alacoque)와 필리베르트 라멩(Philiberte Lamyn)의 7남매 중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대대로 많은 토지를 소유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숲에서 기도하고 성체 앞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4살 때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성녀 알라코크는 대모의 집인 코르슈발(Corechval) 성(城)으로 보내져 8살까지 생활하면서 상류 가정의 예의범절과 교양을 배웠다. 그 후 그녀는 클라라회에서 운영하는 샤롤레의 기숙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첫영성체를 한 성녀 알라코크는 클라라회 수녀들의 생활에 감동해 수도 생활을 더 갈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경계통의 병을 얻어 2년 만에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5년 정도 병상에 누워 지냈는데, 자신의 병만 낫게 해준다면 일생을 성모 마리아의 딸로 자신을 봉헌하며 살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적적으로 병이 나은 후 그녀는 집안의 재산을 공동소유한 친척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학대를 받았다. 1669년 견진성사를 받은 그녀는 결혼을 거부하고 평소 생각해온 수도 생활을 실천하고자 1671년 6월 20일 파레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성모 방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1월 6일 ‘마르가리타 마리아’라는 수도명으로 수도서약을 했다. 그녀는 엄격한 금욕과 기도 생활로 모범적인 수녀였으나 유머 없는 수녀로 통했던 것 같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1673년부터 1675년 사이에 예수 성심의 환시를 4번이나 경험하였다. 이 환시에서 그리스도는 그녀에게 당신의 성심께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는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알렸고, 특별히 첫 번째 금요일에 영성체할 것과 매주 목요일 밤에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고 고통에 동참하는 성시간을 통해 구속사업에 참여하라는 신심을 그녀에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성체 축일 다음 금요일을 당신의 성심을 공경하는 축일로 정하도록 요구하셨다. 그녀는 자신이 환시 중에 받은 그리스도의 교육을 따르려는 노력 중에 장상으로부터 수많은 퇴짜를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온갖 장애를 극복해 나갔다.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발현 문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장상뿐만 아니라 동료 수녀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녀는 당시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파레르모니알의 예수회 원장인 성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Claude La Colombiere, 2월 15일) 신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는 면담을 통해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환시가 올바르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1년 뒤 그는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새로 부임한 원장 수녀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기 위해 그녀에게 더욱 엄격하고 냉정하게 대했다. 1684년 원장으로 선출된 멀랭(Marie Christine Melin) 수녀는 덕과 재능이 출중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멀랭 수녀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 대한 수녀원 내의 반대를 종식하고 그녀를 딸처럼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부원장과 수련장직을 맡김으로써 수녀원 안에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 예식이 가능하게 되었다. 1686년 초에는 수녀원에서 예수 성심 축일을 거행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2년 후에는 예수 성심께 봉헌된 경당이 수녀원 뜰에 세워졌고, 곧이어 예수 성심 축일을 지내는 관습이 전 세계의 성모 방문 수녀회로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는 1690년 10월 17일 병으로 수녀원에서 선종할 때까지 예수 성심 공경의 신심을 전파하는 사도로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1864년 9월 18일에 시복되었으며, 1920년 5월 13일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와 성 요한 에우데스(Joannes Eudes, 8월 19일) 그리고 그녀의 고해신부였던 성 클로드 라 콜롱비에르는 ‘성심의 성인들’로 불린다.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은 1765년에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는데, 이는 그녀의 선종 75년 만의 일이었다.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예수 성심 축일을 대축일로 승격하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낸 다음 금요일에 지키도록 함으로써 성체의 신비와 예수 성심 사이 불가분의 관계를 더욱 분명히 천명하였다. 그리고 전례력 개정 이후 교회 전통대로 선종한 날인 10월 17일에 전례적으로 기념하던 그녀의 축일이 전날인 10월 16일로 변경되었다. 이는 안티오키아(Antiochia)의 성 이냐시오(Ignatius)의 축일이 로마 보편 전례력의 10월 17일로 옮겨 지정되면서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0월 16일로 옮겨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의 축일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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