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Dominicus Ibanez de Erquicia)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Jacobus Kyushei Tomonaga)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633년, 1634년, 1637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그들은 체포된 이후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시신은 불태워진 후 재마저도 흩어지고 말았다. 출신 국가별로 보면 일본 9명, 에스파냐 4명, 프랑스 1명, 이탈리아 1명, 필리핀 1명이다. 에스파냐 출신의 도미니코회 사제인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33년 8월 처음 순교한 이후 필리핀 출신 평신도인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가 1637년 9월에 순교할 때까지 이들의 순교는 계속되었다. 총 16명의 순교자들 중 13명이 도미니코회 사제이거나 3회원이고 나머지 3명도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들 순교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다. 마닐라(Manila)의 성 토마스(Thomas)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필리핀의 여러 지방에서 설교하며 선교활동을 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23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유력한 쇼군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가 묵인된 상태였다. 그러다 다음 쇼군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1587년에 반포된 모든 선교사들의 추방 칙령 시대로 되돌아가 혹독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를 비롯한 도미니코회 사제들은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던 중 발각되어 십자가형, 참수형, 물고문형, 교수대에 거꾸로 달아 구덩이에 떨어뜨려 죽이는 등 여러 방법으로 마지막 며칠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당시 선교지의 대목구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는 1633년 8월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고, 현재 그의 편지 중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는 일본인 출신 사제로 기데수(Kyudetsu)의 귀족 출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가사키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교리교사로 활동하다가 1614년에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필리핀의 마닐라와 대만에서 설교하다가 1632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제로서 신앙을 전파했다는 지목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633년 8월에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복자품에 올랐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Roma)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이들의 축일은 모두 9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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