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테오 코레아 마가야네스는 1866년 7월 23일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의 테페치틀란(Tepechitlan)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1년에 장학금을 받고 사카테카스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1893년 27살의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젊은 사제로서 그는 나중에 예수회 사제가 되고 순교하게 될 복자 미겔 프로(Miguel Pro, 11월 23일)에게 첫영성체를 해주었다. 그는 1898년 콘셉시온 델 오로(Concepcion del Oro)의 본당 신부로, 1908년에는 콜로틀란(Colotlan)의 본당 신부로 임명받았다. 그는 1910년 가톨릭교회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이어지자 몸을 숨겼고, 1926년에는 발파라이소(Valparaiso)의 본당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또한 콜롬부스 기사회(The Knights of Columbus)의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1927년 교회에 대한 정부의 박해가 계속되는 와중에 그는 한 병든 여인에게 노자성체(路資聖體)를 모셔 주다가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는 정부에 대항하는 크리스테로(Cristero) 무장 세력의 일원이란 죄목으로 고발을 당해 사카테카스 감옥에 수용되었고 곧이어 두랑고(Durango)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1927년 2월 5일, 그는 정부군의 장군인 오르티스(Ortiz)로부터 가톨릭교회를 박해하는 정부에 대항하다 잡힌 몇몇 크리스테로 수감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어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장군의 요구에 응해 수감자들의 고해를 들었다. 그러자 장군은 그들의 고해 내용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고, 그는 고해의 비밀은 알려줄 수 없다며 강요한다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군은 그의 머리에 직접 총을 겨누고 위협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다음날 새벽, 그는 두랑고 변두리에 있는 묘지로 끌려가 머리에 총알을 맞고 순교하였다. 성 마테오 코레아 마가야네스 신부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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