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헤수스 멘데스 몬토야는 1880년 6월 10일 모렐리아(Morelia)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남서부 미초아칸(Michoacan) 주(州)의 타림바로(Tarimbaro)에서 태어났다. 그는 1894년에 모렐리아 대교구의 신학교에 입학해 1906년 6월 3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교구 내의 여러 곳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했고, 가톨릭교회에 대한 멕시코 정부의 박해가 심해지는 시기에는 과나후아토(Guanajuato)의 발티에리야(Valtierrilla) 본당의 사목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고자 노력하는 사제였다. 그는 신자들의 영성 생활 안에서 그들을 돕는 방법을 찾았고,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고해성사 안에서 상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을 정성껏 돌보았고, 노동자와 농민들의 교리교사이자 안내자로 헌신했다. 그는 전례적 찬양을 위해 성가대도 만들고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8년 2월 5일 멕시코 혁명정부의 반종교적 정책에 저항하는 크리스테로(Cristero)를 찾기 위해 정부군이 그 지역으로 들어와 그가 머물고 있던 집으로 들이닥쳤다. 그는 즉시 성체를 모신 감실을 보호하기 위해 집으로 갔고 그곳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군인들에게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길 청했고, 다행히 군인들이 그의 뜻을 받아들였다. 성체를 모신 다음 그는 신자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나는 그분의 뜻을 실천할 것입니다.” 군인들은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가 세 발을 총을 쏘았고 순교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갔다. 성 헤수스 멘데스 몬토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로마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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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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