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보는 오늘날 벨기에 동부 플랑드르(Flandre) 지역의 리에주(Liege) 근처에서 프랑크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알로인(Allowin)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는 부유한 지주였으나 젊어서부터 거칠고 이기적인 성격으로 무질서한 삶을 살았다. 그는 아딜리오(Adilio) 백작의 딸과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는데, 그 딸은 나중에 모뵈주(Maubeuge)에 있는 수도원의 수녀원장이 되었다. 결혼 후에도 예전의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성 바보는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은 직후 마스트리흐트(Maastricht)의 성 아만도(Amandus, 2월 6일) 주교의 강론을 듣고 비로소 회심하였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성 아만도의 지도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성 아만도는 그에게 받은 영지에 수도원을 설립했고, 성 바보는 그곳에서 수도승이 되면서 바보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얼마 후 그는 성 아만도를 따라 프랑스와 플랑드르 지방 선교 여행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지난 생활에 대해 크게 속죄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성 바보는 몇 년 전에 자신이 노예로 팔았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을 다시 풀어주고 플로리베르투스(Floribertus) 수도원장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수도 생활을 시작했던 수도원 근방 숲에서 은수자로 살게 해주었다. 선교 여행을 마치고 헨트 수도원으로 돌아온 성 바보는 성 아만도에게 은수 생활을 허락받고, 성 베네딕토회 수도승으로서 수도원 인근 숲으로 들어가 생애의 마지막 3년을 살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시신은 은수처 인근 수도원에 묻혔다가 현재는 1559년 헨트 교구가 설립되면서 주교좌성당이 된 성 바보 대성당에 모셔져 있다. 성 바본(Bavon) 또는 성 바보니우스(Bavonius, 또는 바보니오)로도 불리는 성 바보는 벨기에의 헨트와 네덜란드 하를렘(Haarlem) 교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일 목록에서 헨트의 성 바보의 이름만 간단히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 헨트에 성 아만도의 제자였던 성 바보 수도승이 있었고, 그가 세상을 뒤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준 후 그곳에 설립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 바보는 은수자의 모습으로 또는 회심 이전의 귀족 복장을 하고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는 모습 등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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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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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바보(10.1)] | 성인 이름에 담긴 뜻: 바보(Bavo) | 주호식 | 2021/03/23 | 590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