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페트루스(Petrus, 또는 베드로)는 1210년경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 구비오에서 기센지(Ghigenzi)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로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고 페루자(Perugia)와 프랑스 파리(Paris)에서 민법을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한 후 잠시 파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구비오로 돌아온 그는 유능한 법조인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헌신하다가 40세 무렵인 1251년 파노(Fano) 근처 브레티노(Brettino)의 은수자 공동체에 들어갔다. 그리고 1256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의 수도 규칙을 따르던 몇몇 은수자 공동체가 통합되어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사회(~隱修士會, Ordo Eremitarum S. Augustini)를 결성할 때 복자 베드로가 속한 은수자 공동체도 그 수도회에 가입하였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 생활과 유능한 행정 능력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사제품을 받은 후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이자 수도회의 총대리가 되어 프랑스 지역의 수도원을 방문하는 임무를 맡았다. 복자 베드로는 구비오의 수도원으로 돌아와 1306년경 선종한 후 수도원 성당 제단 뒤에 묻혔다.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나 큰 존경을 받았는데, 어느 날 은수자들이 밤에 번갈아 가며 성가를 불렀는데, 그의 무덤에서 ‘테 데움’(Te Deum)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을 발굴해 보니 부패하지 않은 그의 시신이 입을 벌리고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 꿇은 기도하는 자세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는 1874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23일 목록에서 움브리아의 구비오에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사회 사제인 복자 베드로가 있었다며 그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와 구비오 교구에서는 10월 2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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