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將臺)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사들을 지휘하던 돌로 쌓은 대(臺)를 일컫는다. 조선 시대에는 군영의 연병장 정면에 장대가 있었고, 연병장에서는 군사들의 열병 훈련과 사열이 있었으며 간혹 중죄인을 처형하는 사형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부산시 수영구 광안 4동 546-4번지. 동네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수영 장대골에서는 병인박해 당시 동래의 전교회장이던 이정식 요한(李廷植, 1795-1868년)을 비롯한 8명의 천주교인들이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으로 처형되었다. 우리나라 최대 항구 도시인 부산에는 병인박해 당시 광안동에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이 있어서 붙잡혀 온 천주교인들을 이곳에서 처형하곤 했다.
이때 처형된 교인들의 목은 장대 위에 매달아 두었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경계심과 천주교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많은 천주교인들의 처형장면을 지켜 본 사람들이 경탄하여 구전으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처형을 하는 수영 장교들과 군졸들은 삼엄한 분위기에 위엄을 갖추었지만 사형수들은 마치 잔칫집에 나가는 기쁜 표정으로 순교를 했다.”고 한다.
이때 순교한 이들로는 이정식 요한과 그의 아들 이월주 프란치스코와 아내 박조이 마리아 그리고 조카 이삼근 베드로 등 일가족 4명과 이관복 야고보, 차장득 프란치스코, 옥조이 바르바라, 이정식의 대자인 양재현 마르티노(梁在鉉, 1827-1868년) 등 8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중에서 이정식과 양재현은 2014년 8월 16일 서올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이들 중에서 이삼근과 이관복은 가족관계와 이름과 세례명 연결이 주교회의 편찬 약전과 수영장대 및 오륜대 순교자 성지의 안내문이 다르다. 여기서는 약전의 설명을 따른다.]
이정식 요한은 부산 동래 출신으로 젊어서 무과에 급제하여 교련관(敎鍊官)이 되는 등 여러 소임을 두루 거쳤다. 그러다가 59세의 나이에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는 무관직을 사임하고 첩을 내보내며 가족과 이웃들을 권면하여 입교시키는 등 누구보다 수계와 전교에 열심이었다. 이런 이유로 동래의 전교회장이 되어 자신의 본분을 다하던 중 병인박해(1866년)가 일어났다.
병인박해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그는 교우들에게 티를 내지 않도록 당부하고는 가족들과 함께 기장과 경주로 몸을 피했다가 1868년 봄 울산 수박골로 다시 피신했다. 그러나 박해가 점점 심해져 동래뿐 아니라 인근 울산 · 언양 · 기장 등지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동래 포졸들 역시 갑자기 없어진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고 그들의 종적을 찾았고, 마침내 울산에서 이정식의 가족은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동래로 압송되었다. 동래 옥에서 이정식은 앞서 동래에서 체포되어 갇혀 있던 대자 양재현 마르티노를 만나 서로 위로하며 신앙을 굳게 지키자고 다짐하였다.
동래 부사는 그들을 47일간 옥에 가두어 두고 여러 번 심문하며 형벌을 가하였으나 전혀 흔들림이 없고, 다른 교우들의 사는 곳 역시 발설하지 않자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 구주원(具冑元)에게 넘겨 사형에 처하도록 했다. 수영(水營)으로 옮겨진 이튿날 구주원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혹형을 가한 다음 배교하기를 강요했는데 그들 중 세 사람은 혹형에 못 이겨 배교하여 방면되었다. 그러나 이정식 요한과 그의 아들 부부 등 8명은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그리하여 1868년 9월 창수형을 당하기에 앞서 삼종기도를 바치고 십자 성호를 그은 다음 순교하였다.
이들이 순교한 후 이정식 회장의 가족 4명의 시신은 친척들에 의해 거두어져 부산 가르멜 수녀원 뒷산(동래구 명장동 산96)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9일 오륜대 순교복자기념관(현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뒷동산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이때 나머지 4명의 순교자들은 시신을 찾을 수 없어 기념비만 건립하였다.
수영 장대에서 순교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일성록”(日省錄)과 1951년 8월 20일 현장 목격자인 두 증인의 증언 그리고 1977년 7월 17일 당시 광안 본당 주임신부에 의해 이곳에서 발굴된 장대석 8개, 기와 조각, 동전 등으로 이 같은 증언이 뒷받침되었다.
이에 광안 성당은 1987년 6월 신자들의 성지 조성 헌금으로 이곳의 땅 1백 60여 평을 확보하고 이듬해 7월 부산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성역화에 착수하여 공사를 완공하고 그 해 9월 30일 순교 기념비 제막식 및 현양미사가 교구장 이갑수 주교에 의해 거행되었다. 성지 개발을 맡고 있는 광안 성당은 2004년 7월 5일 성지에 대형 십자가와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하고 이정식 등 8위의 위패를 안치한 후 교구장 정명조 주교의 집전으로 새 성물 축복식을 가졌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