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 넘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 만큼 험한 고갯길인 새재에는 그 옛날 박해를 피해 산으로 깊숙이 숨어들어야 했던 슬픈 탄식이 서려 있다. 충주에서 문경, 괴산에서 제천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올라야 하는 새재는 영남의 관문이다. 그 밑으로 30여 분 거리에 위치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마원 1리는 병인박해 당시 목숨을 빼앗긴 박상근 마티아 등 40여 명 순교자들이 살았던 신앙의 터이다.
본래 조선 시대 마포원(馬包院)이 있었던 터라 ‘마포원’, ‘마원’ 또는 ‘마판’이라고 불린 이 지역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동면 우어리 일부를 병합해 ‘마원리’(馬院里)라 하고 문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원에는 일찍이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 지역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들면서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한실, 문경, 여우목, 건학 등과 함께 마원은 교우들이 화전을 일구며 모여 살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그러던 중 이곳에 박해의 회오리가 불어온 것이 1866년 병인년의 일이다. 서슬 퍼런 탄압은 새재를 넘어 이곳 마원에까지 들이 닥치게 되었고, 이때 마을의 교우 40여 명이 충주, 상주, 대구 등지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과 혹형을 당한 끝에 순교했다.
특히 30세의 젊은 나이로 장렬하게 순교한 박상근 마티아(1837-1867년)의 묘가 이곳에 남아 있어 생생한 신앙의 숨결을 되새기게 해준다. 문경 토박이로 아전(하급 관리)이었다고 전해지는 그는 아마도 신유박해 이후 이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의 신자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지방인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입교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래(Calais, 姜, 1833-1884년) 신부의 전교 기록에 보면 문경에서 가까운 백화산(白華山, 1063m) 중허리에 자리 잡은 한실에 신자 집이 서너 집씩 무리 지어 산재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신자들의 영향으로 그의 집안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 칼래 신부는 그의 출중한 신앙심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를 자신의 집에 은신시킨 용기에 대해 치하하고 있다.
칼래 신부의 기록(1867년 2월 13일자 서한)에 있듯이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박상근 마티아는 3월 중순경 좁쌀을 사기 위해 매형과 함께 한실(현 문경시 마성면 성내리) 교우촌에 갔다. 그곳에는 칼래 신부가 숨어 있었는데, 교우들은 한실보다는 문경 읍내에 숨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박 마티아와 매형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부를 자신의 집에 모셨다.
그러나 이내 마을 사람에게 발각되어 3일 만에 새벽을 틈타 새로운 은신처를 찾기 위해 다시 한실로 가야 했다. 둘은 허기와 갈증으로 고생하면서 험한 산길을 걸었고, 한실 교우촌이 보이는 산에 오르자 칼래 신부는 박 마티아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여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러자 박 마티아는 울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신부님 곁을 떠나다니요. 혹시 한실이 습격을 당했다면 신부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은신하실 곳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신부님 곁을 떠날 수 없습니다. 함께 가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이 험한 곳에서 돌아가신다면, 저도 기꺼이 따라서 죽겠습니다.”
결국 칼래 신부의 명에 순명하여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박상근 마티아는 병인년 12월 숙모 홍 마리아와 친척 박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박 마티아는 평소 친분을 가졌던 문경 현감의 간곡한 배교 권유를 단호하게 물리치고 상주로 끌려갔다. 그는 상주 옥에 갇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고, 문경 인근에서 잡혀온 교우들을 권면하며 순교의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결국 그는 1867년 1월(음력 1866년 12월) 관장의 명에 따라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순교 후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찾아다가 고향에 안장하였다.
성지로 오르는 길에서 본 주차장과 입구 방면 마을 풍경.박상근 마티아의 묘는 1983년 초 안동교구 김욱태 레오 신부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마원리 박씨 문중 산에 대대로 내려오는 묘가 있었는데 여러 정황과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이 묘가 “치명 일기”에서 말하던 순교자 박 마티아의 묘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1985년 9월 15일 현재의 위치에 조성한 새 무덤으로 이장하였다.
안동 교구는 마원에 순교 성지를 조성키로 결의하고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다각적인 성지 개발 계획을 활발하게 추진하는 한편 순교자의 뜻을 기리기 위한 현양 대회를 꾸준히 실시하였다. 1995년 초 문경지구 사목협의회는 성지 개발을 위해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고 진입로를 새로 개설하였다. 아울러 경상북도의 사도인 칼래 신부와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의 장한 믿음과 숭고한 우정을 상징하는 동상과 대형 십자가(부활하신 예수상), 십자가의 길, 성모상 등을 세우고 1996년 10월 3일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박상근 마티아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