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별산대 놀이마당과 유양 초등학교 사이 야산 아래 양주 관아지(楊州官衙址)가 있다. 양주 관아는 1506년(중종 1년) 현재 위치에 설치되어 1922년 시둔면(현 의정부시 의정부 1동)으로 이전될 때까지 417년간 양주목(楊州牧)을 관할한 행정관청이었다. 1871년(고종 8년)에 부천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35개 군의 읍지를 합편한 6책의 필사본인 “경기읍지(京畿邑誌)” 등에 양주 관아에 동헌(東軒), 객사(客舍), 사창(司倉), 군사시설 등 약 31개의 관아 시설을 갖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양주시는 1997년 양주목사의 집무처인 동헌(매학당)을 복원하고, 1999년 4월 23일 양주 관아지를 경기도 기념물 제167호로 등록했다. 2000년부터 2017년까지 5차례의 발굴조사를 진행해 관아의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 다수의 건물지와 담장지, 각종 유물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발굴조사 결과를 반영해 동헌부 부속건물 및 내아에 대한 복원작업에 들어가 2017년 동헌부 부속건물인 동행각, 서행각, 내삼문, 사령청, 외삼문, 중렴성문, 외렴성문과 양주목사의 관사였던 내아, 내아삼문에 대한 복원을 완료하고, 이듬해까지 주변 환경 정비를 시행했다.
박해시대 경기도 북부 지역의 신앙 공동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으나 박해가 진정되고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재건 속도가 빨라져 1830년대 초 고양(高陽) 지역에선 70-90명 규모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지역은 서울 인근이라는 지리적 배경 때문에 경기 동부나 남부에 비해 교세적인 측면은 약했지만, 새로운 교우촌 형성과 기존 교우촌 재건을 통해 신앙을 이어갔고 초기 교회 때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런 신앙 전통은 초기 포천과 마재에서 19세기 전반 · 중반기엔 고양과 송도 지역으로, 장단 · 파주 · 포천 · 양주 등으로 확산되었다.
양주 관아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용인과 이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순교지가 되었다. 바로 이곳에서 김윤오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 마리아, 박 서방, 홍성원 아우구스티노 등 5명이 순교했다고 “치명일기(致命日記)”는 전하고 있다.
1866년 김윤오와 그의 아내 권 마르타는 용인 굴암에서 거주하다가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었고, 김 마리아(중국으로 가서 죽은 최 프란치스코의 아내)는 용인 한덕골에서 거주하다가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양주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는 박 서방은 홍주에서 부부가 함께 치명한 박사행의 부친으로 양주 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868년에는 홍성원이 포천에서 양주 포교에게 체포되어 치명하였다. 홍성원의 부친 홍몽노 베드로는 포천 고약리에서 공소 회장을 하다가 한양에서, 형 홍성국 요한은 경기도 광주에서, 동생 홍성선은 공주에서 치명하였다.
병인박해의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도 1883년 이전에 경기 북부 지역에는 이미 양주 고령(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가라비(현 양주시 광적면 우고리), 연천 밤골에 공소가 있었으며, 1886년 한불조약 체결 이후 약현 본당과 송도 본당이 설립되면서 이 지역 신자 수가 크게 늘었다.
1909년 행주 본당과 1925년 신암리 본당 설립 이후 경기 북부 지역의 공소 수는 이전에 비해 감소했지만 기존에 공소가 없었던 지역에까지 신앙이 전파되어 새로운 공소가 설정되었다. 1924년 448명에 불과하던 이 지역 신자 수가 1937년에는 1,700여 명으로 증가한 것이 이를 잘 방증해 준다.
의정부교구 순교자공경위원회는 2008년 ‘경기 북부 지역과 한국 천주교’ 심포지엄을 통해 “치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양주 관아 일대의 치명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았고, 증언을 통해 오래 전에 순교지라는 표지석이 있었던 자리를 확인하고 토지 매입을 진행하여 양주 향교 앞의 순교터 3,766㎡를 매입하였다. 이어서 2016년 5월 28일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양주 순교성지를 의정부교구 내 첫 순교성지로 선포하고 현양미사를 봉헌하며 성역화를 시작했다. 2017년 9월 전담 사제를 임명하고 순교터 천막성당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양주 순교성지의 성역화와 순교자 연구에 박차를 가하였다. 2018년에 성지 내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고, 현재는 임시 조립식 건물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기념성당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종수정 2021년 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