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본당 설립 전 동소문 지역의 신자들은 1909년 백동(현 혜화동)에 정착한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주일미사에 참례하거나, 1918년경 설정된 동소문 밖 공소의 공소예절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1927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함경남도 덕원으로 이전하게 되자 서울 대목구장 뮈텔 주교는 수도원 건물을 매입하여 1927년 4월 시잘레 신부를 초대주임으로 임명하고 서울 대목구의 세 번째 본당인 백동 본당(현 혜화동 본당)을 설립했습니다.
1929년 서기창 신부는 옛 수도원 성당을 백동으로 이전한 소신학교에 양보하고, 대신 수도원 부속 건물이던 목공소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고 주보를 ‘성 베네딕도’로 정했습니다. 1937년 오기선 신부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배우게 하여 민족의 얼을 심겠다’는 취지로 ‘혜화유치원’을 설립했습니다. 1950년 9월 서울 수복 후 부임한 정원진 신부는 1958년 성당 신축 정초식을 거행하면서 본당 주보성인을 기존의 ‘성 베네딕도’와 더불어 ‘성녀 소화 데레사’로 정했습니다. 본당 신축에 힘을 쏟은 혜화동 성당은 1960년 장금구 신부 때 성당과 사제관(1층)을 완공하여 노기남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1975년 박희봉 신부는 새 사제관(2층)의 축복식을 거행했고, 1977년 “백동 반세기”를 간행했으며, ‘103위 순교 복자 성화’도 제작했습니다. 1979년에는 성당 제대 뒤에 도자기 벽화를 제작했고, 이듬해 성당 오른쪽 유리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습니다. 1982년 서울시의 지하철 4호선 공사 계획에 따라 본당의 대지 일부가 수용되어 몇몇 건물이 철거되자 교육관 신축을 결정하여 1983년 준공했습니다. 1989년 이상훈 신부는 소규모의 전례 행사와 교리 강좌 등을 위해 지하 성당(현 소화 성당)을 완공하였고, 1991년 성당 왼쪽 유리창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습니다.
1993년 박순재 신부는 종탑에 청동 십자가를 설치했고, 지하 성당을 보수하여 정식으로 ‘소화 성당’으로 명명했습니다. 1994년에는 강당을 2층에서 4층으로 증축하여 ‘백동관’으로 명명했습니다. 1996년 염수의 신부 때는 소화 성당 내에 ‘게쎄마니의 기도’라는 설치미술 작품을 완성했고, 성당 앞 계단에 새로 한국인 성모상과 요셉상을 제작하여 안치했으며, 본당 소장 성미술품 도록인 “우리와 함께 머무소서”를 제작했습니다. 1997년에는 정문 오른쪽에 성물 보급소(2층)를 완공하여 ‘분도의 집’으로 명명했고, 9월에는 “백동 70년사”를 간행했습니다.
2006년 3월 서울에서 첫 번째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된 혜화동 성당은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성당 건축의 모형으로서 근대적 건축미를 지닌 기념비적 건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성당 건립을 위해 가톨릭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한국 교회미술 발전의 계기가 되었으며, ‘교회미술의 보물창고’라 할 만큼 다양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젊음과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와 붙어있는 혜화동 성당은 젊은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