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에 위치한 개갑 장터는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고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고창군은 2004년 6월 개갑장터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
또한 개갑 장터는 인근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여겸 마티아(崔汝謙, 1763-1801년)의 순교 터이기도 하다. 그는 일찍이 복자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에게서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또 혼인한 뒤에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에서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李存昌, 1759-1801년)를 만나 다시 교리를 배우고 아주 열심인 신자가 되었다. 이후 고향 무장으로 돌아온 최 마티아는 충실히 교리를 실천하고 자신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이웃에게 전파하는데 힘써 흥덕 · 고창 · 영광 · 함평 등지에서 28명을 입교시켰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최 마티아는 일단 한산의 처가로 피신하였다. 이때 무장에서는 그가 입교시킨 신자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었으며, 그들을 문초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 결과 최 마티아는 4월 13일 한산에서 체포되어 일단 그곳에서 문초를 받고, 감사의 명에 따라 무장으로 이송되었다.
최 마티아가 무장 관아에 이르자, 관장은 곧장 그에게 형벌을 가하면서 문초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어떠한 형벌로도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하도록 하였다. 이곳에서도 최 마티아는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옥중에서 열렬한 신자인 복자 한정흠 스타니슬라오(韓正欽, 1756-1801년)와 김천애 안드레아(金千愛, 1760-1801년)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 후 최 마티아와 동료들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형조에서는 1801년 8월 21일,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였고, 각각 고향으로 보내 처형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따라 최 마티아는 고향인 무장으로 이송되었고, 며칠 후 그곳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때가 1801년 8월 27일(음력 7월 19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형조에서 최여겸 마티아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최여겸은 처음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웠으며, 이후로는 이존창을 따르면서 교리를 독실히 믿고 익혔다. 또 그 교리로 남들을 속여 미혹시키고, 널리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자신도 망치고 남들도 망치게 하였으니, 만 번 죽여도 아깝지 않다.”
전주교구 고창 본당은 이런 역사적 · 교회사적 사실에 근거해 2002년부터 고창군과 함께 개갑 장터를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고, 인근 유적지와 연계해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2004년 1차로 부지를 매입해 표석을 설치하고, 2009년부터 고창군과 함께 개갑 장터 부지에 ‘최여겸 마티아 순교터 성지조성 개발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에 들어갔다. 총 16,500㎡(5,000여 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400m 길이의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하였다. 12m 높이의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벽면은 최여겸 순교자의 활동상과 순교를 주제로 남용우 마리아 원로 유리화가의 모자이크 색유리화로 장식하였다.
2013년 9월 28일, 오랜 준비 끝에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최여겸 마티아 순교성지 축복식과 순교자 현양미사를 봉헌하였다. 2015년에는 복자 최여겸 마티아 순교터 표지석과 부활동산을 조성하는 등 전주교구와 고창 본당 그리고 고창군은 개갑 성지를 서남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성지로 개발해 가고 있다. 한편 최여겸 마티아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어 복자품에 올랐다. [출처 : 복자 최여겸 마티아 약전(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4년) &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7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