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의 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400-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관 영장이 현감을 겸하여 지역을 통치를 하던 곳이다. 내포 일원의 해안 국토 수비를 명목으로 현감겸영장(縣監兼營將)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지속적인 박해 동안 해미 진영(지금의 해미읍성, 사적 제116호)에 있던 두 채의 큰 옥사에는 한티고개를 넘어 내포 지방에 끌려온 천주학 죄인들이 항상 가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도 바로 이곳에서 옥사하였다). 또한 옥사 앞에는 당시 순교자들의 손발을 묶고 나뭇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던 일명 호야나무(회화나무, 충청남도 기념물 제172호)가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을 희미하게 간직한 채 지금도 우뚝 서 있다. 그래서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옥사터 주변 땅 1,800여 평을 확보하여 공소 강당을 세웠는데, 1982년 정부가 문화재 관리 정책이란 명목으로 공소 강당을 철거하고 그 터를 일부 보상, 일부 징발한 후 순교 기념비만 새로 세워주었다. 그 후 오늘날까지 옥사터에 대한 교회 자체적인 성역화 사업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해미 진영의 서문 밖 바로 앞에 있는 70여 평의 좁은 순교성지에 자리개질에 이용되던 돌다리가 보존되어 있는데, 1956년에 서산 성당(현 서산동문동 성당)으로 이전 · 보존되다가 1986년 9월에 원위치를 찾아 복원되었다가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 개설로 인해 2009년 1월 8일 해미 생매장 순교성지 내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재 서문 밖 순교성지에 있는 자리개 돌다리는 모조품이다. 그리고 도로로 둘러싸인 순교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순교현양비는 1989년 6월 24일 세운 것이다.
교회가 이곳을 순교지로 인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어 버려지던 뼈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 캐어내던 뼈들은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묻었다는 증거이다. 1935년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의 지도 하에 해미 진영 서녘의 생매장 순교 벌판에 대한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때 발굴한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 성물들은 그해 4월 2일 30리 밖 상홍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9월 20일 원래 순교터로 이장되었다. 이때 순교자들의 유해 일부는 별도로 보존 처리하여 모셨다가 현재는 해미순교성지 기념관 내의 유해참배실에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무명 생매장 순교자들의 묘역 뒤에는 16m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인 해미 순교탑이 세워졌다.
해미 순교성지는 1985년 4월에 해미 본당이 설립된 후 해미 순교선열현양회를 발족하였고, 순교성지 확보운동을 전국 신자들에게 홍보하여 꾸준히 모금한 결과 1998년 말에 생매장 순교터 부지 약 7천 여평을 확보하였고, 이어서 1999년 5월부터 3천 명의 회원들로부터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아 2000년 8월 기공식을 갖고 2003년 6월 17일 무명 순교자 기념 성당을 건립하여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셔놓고 있다. 이렇게 조성된 생매장 순교지 일대는 “예수 마리아!”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로 알아듣던 곳이 이제는 주민들의 입으로 “여숫골”이라는 이름의 땅이 되어 오늘의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를 위해 해미 순교성지를 방문하여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을 갖고 해미읍성에서 폐막미사를 집전하였다. [출처 : 해미성지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6년 1월 30일)]
관아터와 장터길 진영장이 호령하던 옛 동헌 또한 헐려 없어졌다가 복원되었다. 그 옆에 아문과 호서좌영의 옛 모습 또한 복원되어 있고, 그 주위로 노송 여러 그루가 당시 호령 소리, 곤장 치는 소리, 비명 소리를 이파리마다 묻혀 놓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다. 관아터로부터 남서쪽으로 헐려진 옛 집터 사이사이에 질퍼덕한 길이 있었다. 옛 저자 길로 옛님들이 저주의 욕설을 온몸에 묻혀가며 형장으로 호송되던 길이었다.
피의 제사장 자리개돌 서문 밖 순교지에서 순교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방법은 가지가지였다. 돌로 쳐 죽이기도 하고, 돌구멍에 줄을 꿰어 목에 옭아 지렛대로 조여 죽이기도 하고, 묶어서 눕혀 놓은 여러 명을 돌기둥으로 내리 눌러 죽이기로 하였으며, 얼굴에 백지를 덮고 물을 뿌려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고, 나무에 매어 달고 몽둥이로 죽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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