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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란드(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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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베르트란드 (Bertrand)
축일 9월 6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신부, 수도원장
활동지역 가리그(Garrigues)
활동연도 +1230년경
같은이름 베르트란도, 베르트란두스, 베르트란트, 베르트랑
성인 기본정보

   복자 베르트란드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 님(Nimes) 교구에 있는 가리그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타리파(Cathari) 또는 알비파(Albigenses) 이단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던 프랑스 남부에서, 내란으로 인해 나라마저 분열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성장했다. 이 이단 사상은 철저히 이원론을 주장하며 물질세계는 악하기에 구원은 오직 물질인 육체에서 영혼을 해방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복자 베르트란드는 어려서부터 정통교리를 배웠으나 이단의 유혹이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 위험성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고 교구사제로서 알비파에 맞서는 시토회 선교단에 동참하였다. 이 선교 활동 중에 복자 베르트란드는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를 처음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215년 복자 베르트란드는 같은 지향으로 성 도미니코 주위에 모인 6명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고, 그다음 해에 모두 16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이 성 도미니코가 영혼 구원을 위한 사도직을 수행하던 초기에 만난 16명의 동료이자 제자들이었고, 복자 베르트란드는 그들 중 한 명으로서 설교자회의 흰 수도복을 입은 최초의 제자 중 하나이다.

   그들은 성 도미니코의 지도하에 1년 동안 툴루즈(Toulouse)의 수도 공동체에서 살았다. 성 도미니코는 복자 베르트란드에게 툴루즈 공동체를 맡기고 1216년 말 로마(Roma)를 방문해 교황 호노리오 3세(Honorius III, 1216~1227년 재임)에게 ‘설교자들의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 OP)라는 이름으로 도미니코 수도회(설교자회)의 설립을 공식 승인받았다. 이듬해에 성 도미니코는 형제들을 몇 명씩 나눠서 세상으로 파견하였다. 복자 베르트란드는 사부의 명에 따라 동료와 함께 파리(Paris)로 파견되어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대학 근처에 설립되어 도미니코 수도회의 학술 전통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파리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성 도미니코는 그를 다시 이탈리아의 대표적 대학도시인 볼로냐(Bologna)로 파견하여 수도원을 설립하도록 했다. 복자 베르트란드는 성 도미니코의 믿음직한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사부의 수도회에 대한 이상과 전망을 공유한 인물이었다.

   1221년, 설립자인 성 도미니코가 선종한 해에 볼로냐에서 개최된 제2차 설교자회 총회에서 수도회를 8개 관구로 나누기로 했고, 복자 베르트란드가 프로방스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9년 동안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하며 마르세유(Marseilles) 수도원을 설립하며 수도회의 활동을 넓혀나갔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 활동으로 유명했다. 그는 말년에 가리그 근처 부셰(Bouchet) 마을에 있는 시토회의 노트르담 드 보스케(Notre-Dame-du-Bosquet) 수녀원의 수도 생활을 쇄신하기 위해 영성 생활에 관한 설교를 하러 갔다. 그러던 중 병에 걸려 1230년경 그곳에서 선종하여 수녀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순례자가 늘어나자 1414년에 그의 유해를 오랑주(Orange)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성당으로 옮겼는데, 1561년 종교 전쟁 중에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무덤이 파괴되고 유해는 불태워졌다.

   복자 베르트란드에 대한 공경은 1881년 7월 1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가 선종한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으나 9월 6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6일 목록에 가리그의 복자 베르트란드 신부의 이름을 새로 추가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 오랑주의 부셰 시토회 수도원에서 성 도미니코의 첫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항상 스승의 모범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던 그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이자 나중에 로데브(Lodeve)의 주교가 된 베르나르 기(Bernard Gui)는 그에 대해 이런 글을 남겼다. “그는 관상과 단식 그리고 다른 모든 보속 행위를 통해 가장 사랑하는 사부를 본받아 참으로 스승에 비길만한 제자가 되었고, 성 도미니코를 그대로 닮은 위대한 수도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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