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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사도스는 341년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의 성 시메온(Simeon, 4월 17일) 주교가 샤푸르 2세(Shapur II, 309~379년 재위) 왕이 일으킨 세 번째이자 가장 잔혹한 박해로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백여 명의 동료와 함께 순교한 뒤에 그의 후임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원래 성 시메온 주교의 조카로 부제 직분을 맡아 주교의 직무를 도왔었다. 박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주교직을 계승한 그는 은신처에서 비밀리에 양 떼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그는 꿈속에서 신비로운 환시를 보고 다른 사제와 부제들의 모임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나는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사다리를 보았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 꼭대기 위에 성 시메온이 영광스럽게 서 있었고, 나를 보고는 ‘사도스야! 두려워하지 말고 올라오너라. 어제는 내가 올라갔는데, 오늘은 너의 차례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 환시를 앞으로 다가올 순교를 준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듬해에 샤푸르 2세가 셀레우키아-크테시폰에 왔다. 이때 성 사도스 주교와 128명의 동료가 체포되었는데, 그들은 사제와 하위 품계의 성직자들과 하느님께 봉헌한 동정녀들이었다. 그들은 지하 감옥에 갇혀 몇 달 동안 끔찍한 고문을 당하며 태양 숭배를 강요당했다. 하지만 성 사도스는 태양은 유일신이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창조한 수많은 창조물 중 하나이니 창조주만이 태양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결국 그들은 둘씩 쇠사슬에 묶인 채 형장으로 끌려갔는데, 죽을 때까지 성가와 기도를 계속해 샤푸르 2세를 놀라게 하였다. 성 사도스는 양 떼와 분리되어 오늘날 이란 서부 후제스탄주(Khuzestan州)에 있는 베트 라파트(Beth Lapat, 페르시아의 군데샤푸르[Gundeshapur]로 수사[Susa]와 슈슈타르[Shushtar] 사이에 샤푸르 1세가 건설한 도시)로 끌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전통적으로 그는 342년 2월 18일경에 순교했다고 하는데, 페르시아의 순교 행전은 그가 주교로 재임한 지 불과 8개월 후인 342년 2월 20일 토요일에 순교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20일 목록에서 페르시아의 샤푸르 2세 왕 시대에 상 사도스 주교와 128명의 동료가 태양 숭배를 거부하고 잔인한 죽음을 통해 빛의 왕관을 받았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8일로 축일을 옮겨 페르시아 왕국의 베트 라파트 지역에서 셀레우키아의 주교 성 사도스와 128명의 동료 순교자들(사제, 성직자, 동정녀)이 태양 숭배를 거부해 감옥에 갇혀 오랫동안 잔인한 고문을 당하다가 결국 왕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사도스의 후임자도 몇 년 뒤에 순교한 후 셀레우키아-크테시폰 교구는 거의 40년 동안 주교좌가 공석이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거나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성 사도스는 성 샤도스트(Shahdost) 또는 성 사독(Sadoc)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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