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노사 로사(Rosa)는 서울의 어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성교회를 모르고 자랐고 결혼까지 하였으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 후 그녀는 교우 친척과 함께 살게 되니, 자연히 교리와 수계생활에 남다른 발전이 있었고, 신앙의 보배를 얻을 것을 매우 기뻐하여 다른 사람들 특히 어머니와 오라비에게 그 보배를 나누어 주고자 하였다. 그 후 조선에 신부가 입국하였음으로 자주 성사를 받았음으로 그녀의 신심은 날로 깊어갔다. 1838년 12월 2일경 포졸들이 갑자기 자기 집에 들이닥치자, 그녀는 위주치명할 마음이 있었으므로 자기 집에서 별안간 체포되어 순교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증거하려고 큰 소리로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면서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판관은 곧 그녀를 재판장으로 불러내어 그 앞에 각종 형틀을 늘어놓고 보여주면서 배교를 강박하고 동교인의 이름을 대라고 협박하였다. “다리를 부러트리고 몸을 토막토막 잘라 내기 전에 천주를 버리고 너의 무리들의 이름을 대라.” “천주를 배반할 수도 없고 교우를 댈 수도 없습니다.” “어째서 못하겠느냐?” “천주는 모든 사람의 창조자시오, 아버지이시며 덕을 사랑하시고 악을 벌하시며 덕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상을 주시고 악한 사람에게는 끝없는 벌을 주십니다. 천주를 배반함은 죄악이니 삼가야 할 것이요, 사람을 해하는 것도 나쁜 일이니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이상 더 강권하셔도 쓸 데 없습니다. 저는 피를 흘려 이 진리를 증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그 교를 금하고 계시지 않느냐?” “그렇소이다. 저는 임금님께 매어 있기는 합니다만 그보다 먼저 천주께 속하여 있습니다.” 이에 판관은 로사에게 갖은 형벌을 주게 한 후 사형 판결을 내렸으나,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었다. 그 후 정부로부터 사형을 빨리 집행하라는 독촉이 있자, 1839년 7월 20일에 서소문 밖에서 다른 7명의 신자와 함께 참수 순교하니, 그녀의 나이는 5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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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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