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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술피키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Sulpicius I, 또는 술피치오 세베로)는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아쟁(Agen)에서 저명한 갈로로망(Gallo-Roman)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은 그와 우정을 나누고 서신을 교환하며 그의 전기를 작성한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1월 17일)를 통해서이다. 그에 따르면 성 술피치오는 갈리아 지방 최초의 상원의원 중 한 명으로 문학과 법학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시인이자 웅변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584년 부르주의 주교인 레미기우스(Remigius)가 선종하자 여러 후보자가 부르고뉴(Bourgogne)를 통치하던 곤트라노(Gontrano) 왕의 호의를 얻기 위해 선물을 제안하였다. 왕은 그러한 행위를 성직매매로 보아 거부하고 주민들에게 성 술피치오를 선출하도록 한 후 그에게 당시 화재로 인해 황폐화한 도시의 재건을 맡겼다. 그는 즉시 사제품을 받고 고위 공직에서 물러나 주교좌에 올랐다. 성 술피치오는 주교직에 올라 영적인 지도자로서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보호자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585년부터 588년 사이에 마콩(Macon)과 오베르뉴(Auvergne)에서 열린 시노드에 참석했고, 카오르(Cahors)의 주교와 로데즈(Rodez)의 주교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아르베르니스(Arvernis, 오늘날의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에서 시노드를 소집하기도 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가 행한 설교의 명확성과 고상함 그리고 성직자들의 규율을 확립하고 교육에 힘쓴 사목적 열정과 뛰어난 행정력에 대해 칭송하였다. 그는 591년 1월 29일 선종하여 부르주의 성 스테파노(Saint-Etienne) 주교좌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나중에 같은 이름의 부르주 주교인 성 술피치오 비오(Sulpicius Pius, 1월 17일)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뒤에 ‘엄격한’이란 뜻을 지닌 세베로가 붙어 성 술피치오 세베로로 불리게 되었다. 한동안 성 술피치오 세베로는 같은 이름을 가진 갈리아 지방의 교회사가이자 성인전 작가로서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노(Martinus, 11월 11일)의 전기를 작성한 술피키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 +420/425년경)와 혼동되곤 하였다. 한때 옛 “로마 순교록”에 올라 한동안 성인으로 간주하기도 했지만 이후 오류를 바로잡았다. 그 뒤로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29일 목록에서 부르주에 덕행과 학식으로 유명한 성 술피치오 세베로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프랑스 아키텐 지역 부르주의 주교이자 갈리아의 상원 의원이었던 성 술피치오 세베로가 지혜와 사목적 배려 그리고 규율을 회복하려는 열정으로 인해 투르의 성 그레고리오로부터 높은 칭송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명한 생 쉴피스(Saint-Sulpice) 신학교는 그의 후임자였던 성 술피치오 비오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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