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임이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서울 관우물골의 어느 신자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테레사는 열심히 계명을 지켰으며, 성인전 읽기를 좋아하고 그 덕행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이미 일곱 살 때에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였으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남을 도와주고 자기 영혼을 구하는 것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여교우들이 임종할 때에 선종하도록 도와주고, 죽은 후에는 장사 지내는 일과 그들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하는 것을 마치 자신의 직분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활함으로써 테레사의 집안과 친한 이웃 사람들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판단한 그녀는 몸을 피하기 위하여 왕비궁의 침모로 들어가 3년 동안 살았다. 그 후 궁궐에서 나와 20세가 되었을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얼마동안 오빠인 김 베드로(Petrus)의 집에 머물러 있다가, 그 뒤에는 친척이나 혹은 친지의 집을 찾아다니며 살았는데, 특히 이문우 요한(Joannes)의 양모 집에 가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1844년 테레사는 김대건 신부의 식모로 들어가게 되었다. 1839년부터 1841년까지 박해를 체험한 신자들은 새로운 박해가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불안하기 그지없는 생활을 하였으나, 그녀는 오히려 순교할 각오를 하고 있었는지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언제고 신부님이 잡히시면 나는 자수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신부님의 뒤를 따를테니 이 세상에서 오랫동안 나하고 같이 살 생각은 하지 말라.” 잡히기 전날 테레사가 동생을 만나러 갔는데, 동생이 밤을 지내고 가라고 붙들자 테레사는 “안 된다. 현 카롤루스(Carolus) 회장님과 여러 교우들이 새 집에 바로 오늘 밤에 모여서 일을 의논하기로 했으니까 꼭 가보아야 한다.” 하며 돌아갔다. 이리하여 그날 밤, 테레사는 현 카롤루스의 집에서 다른 여신자들과 잡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옥중에서도 그녀는 가장 용감하였고 같이 있던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라고 여러 번 권하였다. 그러던 중 테레사는 혹독한 매질을 이기지 못하여 순교하니, 때는 1846년 9월 20일이요 그녀의 나이는 36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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