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사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였던 성 시몬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신원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에 언급한 ‘예수의 형제’(마르 6,3; 마태 13,55) 명단에 등장하는 시몬인 듯하다. 교회사학자인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저서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성 시몬이 “주님의 삼촌인 성 클레오파스(Cleophas, 9월 25일)의 아들”이었으며, 주님의 형제인 사도 성 야고보(Jacobus, 5월 3일)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가 노년에 순교했다고 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2월 18일 목록에서 주교이자 순교자로서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성 시몬은 클레오파스의 아들이며, 혈통으로는 구세주와 가까운 친척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그는 주님의 형제인 성 야고보 다음에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재위)의 박해 때 많은 고문을 받고 순교했는데, 12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십자가 형벌을 견디어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뿐만 아니라 재판관까지도 놀라워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성 시몬에 대해 같은 내용을 전해주었는데, 다만 전례적 기념일을 2월 18일에서 동방 교회와 같은 4월 27일로 변경하여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던 여인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요한 19,25)가 성 시몬의 어머니였고, 성 시몬은 예수님의 외사촌 형제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클레오파스는 아람어 이름 클로파스(Clopas)를 그리스어 형태로 변형한 이름으로 같은 인물이다.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된 것은 사도 성 야고보가 순교한 62년으로 추정되는데,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사도 성 야고보가 순교한 이후 예루살렘에는 반로마 메시아니즘이 등장하였다. 유다 민족주의를 거부한 대부분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피해 요르단강 서안으로 이주하였고,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결별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성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활동한 시기는 많은 박해와 어려움으로 얼룩진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메온(Simeon)으로도 불리는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열혈당원 시몬과 동일 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마태 10,4;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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