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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눌포(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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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아르눌포 (Arnulf)
축일 8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수아송(Soissons)
활동연도 +1087년
같은이름 아르놀도, 아르놀두스, 아르눌, 아르눌푸스, 아르눌프
성인 기본정보

   성 아르눌푸스(Arnulphus, 또는 아르눌포)는 1040년경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기사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의 앙리 1세(Henri I, 1031~1060년 재위) 왕의 기사로서 군 복무에 헌신하였다. 하지만 1060년경 세상보다는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수아송으로 가서 생메다르(Saint-Medard) 수도원에 들어가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모범적인 수도 생활로 실천했다. 그리고 장상의 허락을 받아 자발적으로 봉쇄된 공간에서 은수자의 삶을 시작했다. 3년 동안 작은 방에 들어가 절대 고독을 즐기며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기도와 참회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생활은 1076년에 그가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어 억지로 불려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수도원장 직책을 피하고 싶어서 도망가려 했으나 늑대가 길을 막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원장직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1081년에 교구 성직자와 시민들은 시노드를 열어 성 아르눌포를 수아송의 새 주교로 선출하였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교직을 수락했지만 모든 업무에서 놀라운 지혜와 정열을 보여주었다. 그는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개혁을 강력히 지지했는데, 필리프 1세(Philipp I, 1060~1108년 재위) 왕의 지원을 받는 전임자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또한 여러 차례의 군사적 충돌에서 중재자로 활약해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평화의 사도’로 불렸다. 하지만 반대자들의 압력으로 1085년에 수아송의 주교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는 모든 일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플랑드르 지방 브뤼헤(Brugge) 근처 오덴부르크(Oudenburg)에 베네딕토회의 생피에르(Saint-Pierre)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평화 조약을 맺으라는 부름을 받고 여행을 가던 중 병에 걸려 1087년 8월 15일 오덴부르크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무덤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에 대한 공경이 활발해졌다. 1120년에 소집된 보베(Beauvais) 시노드에서 수아송의 주교는 성 아르눌포의 전기를 제출하며 그의 유해를 성당으로 이장할 수 있는 허락을 요구했고, 그의 유해는 이듬해 생피에르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제분업자와 맥주 양조업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데, 이는 그의 수도원에서 맥주 양조를 하여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세 유럽에서 맥주는 물만큼 중요한 음료였는데, 맥주를 만들기 위해 탁한 물을 끓여 소독하고 알코올과 홉 덕분에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5일 목록에서 프랑스의 수아송에 성 아르눌포 주교가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4일로 축일을 옮겨 수아송의 주교였던 성 아르눌포가 플랑드르의 오덴부르크에서 선종했는데, 그는 군인에서 수도승이 되었고 나중에 주교로 선출되어 평화와 화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자신이 세운 수도원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였다. 성 아르눌포는 성 아르눌(Arnoul), 성 아르놀두스(Arnoldus, 또는 아르놀도)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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