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1444~1446년, 1451~1481년 재위)는 1453년 젊은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함락시키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 후 발칸 반도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그리고 오늘날 튀르키예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 전체를 점령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넓혀갔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성공한 후 자신을 로마 제국 황제의 계승자라고 자부하였다. 그는 1479년 로도스섬(Rhodos Is.) 정복이 실패한 후 이미 점령하고 있던 알바니아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 해안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1480년 7월 28일, 약 140척의 함선과 1만 5천 명의 병력을 거느린 투르크(Turks) 군대가 성 안토니우스 프리말도(Antonius Primaldo, 또는 안토니오 프리말도)와 그의 동료들이 거주하던 오트란토 해안에 접근했다. 당시 이 도시의 인구는 최대 6천 명이었고, 토스카나(Toscana)에서의 군사 작전을 위해 아라곤(Aragon) 수비대가 도시를 버리고 떠난 상태였다. 포위 공격이 시작되자 투르크 군은 즉각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남아 있는 오트란토의 시민들이 이를 거부하자 포격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5일간의 포위 공격 끝에 8월 12일에 성채가 함락되고 말았다. 성벽이 무너지자 투르크 군은 도시를 약탈하고 대성당에서 십자가를 들고 기다리던 스테파노 아그리콜라(Stefano Agricola) 대주교와 참사 위원과 사제들과 수많은 신자를 무참히 살해하였다. 8월 14일,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Gedik Achmed Pascia) 사령관은 살아남은 15살 이상 약 800여 명의 남자를 모두 미네르바 언덕에 있는 투르크군 진영으로 끌고 가서 배교하지 않으면 죽음뿐이라며 개종을 강요하였다. 이때 겸손한 구두 수선공이자 직조공이었던 성 안토니오 프리말도 노인이 모두를 대표하여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그는 “우리는 이 도시와 우리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또 우리는 우리 영혼과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죽으면 살 것입니다.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었는데, 그분을 배신하고 무슬림이 되느니 차라리 천 번이라도 죽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있던 이들이 큰 환호성을 질렀다. 투르크군의 사령관은 즉시 그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했고, 그들은 나중에 순교자의 언덕으로 이름이 바뀐 미네르바 언덕에서 무참히 참수되거나 칼에 찔려 순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성 안토니오 프리말도는 가장 먼저 참수된 후 사형 집행인들이 쓰러뜨리려 해도 처형이 모두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고 한다. 그 뒤로 1년 가까이 순교자들의 시신은 처형 장소에 매장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가 오트란토 해방을 위해 파견된 아라곤 군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1481년 5월에 순교자들의 유해는 인근 미네르바 분수(at fonte della Minerva)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이듬해 9월 오트란토 대성당(Cattedrale di Otranto)의 유물함에 안치되었다. 그들은 즉시 ‘오트란토의 순교자들’로 인정받아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오트란토 대교구는 매년 8월 14일에 그들의 기념일을 경건하게 지내왔다. 1539년부터 ‘오트란토의 순교자들’ 시복을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1771년 12월 14일에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는 이미 오랫동안 오트란토 순교자들에 대해 봉헌된 공경 예식을 재확인하는 칙령을 통해 그들을 복자의 품에 올렸다. 오트란토 순교 복자들에 대한 공경은 1980년 10월 5일 순교 500주년을 기념해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10월 22일)가 오트란토에서 장엄하게 미사를 집전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어 시성을 위한 오트란토 대교구의 자료 조사와 절차가 진행되었다. 역사와 신학 자문 회의를 거쳐 추기경과 주교들은 성 안토니오 프리말도와 동료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순교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2007년 7월 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는 그들의 순교를 인정하는 교령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2012년에는 순교자들의 중재를 통한 기적적인 치유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은 2013년 5월 12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거부해 순교한 ‘오트란토의 순교자들’ 813명을 성인품에 올렸다. 가장 먼저 순교하여 ‘프리말도’라는 별명이 붙은 성 안토니오 외에는 모두 무명 순교자들이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14일 목록에 ‘오트란토의 순교자들’에 대해 추가 등록하면서, 이탈리아 남동부 풀리아(Puglia) 지방의 오트란토에서 오스만 군인들의 공격으로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받았던 약 800여 명의 순교자가 나이 든 직조공인 성(당시에는 복자) 안토니오 프리말도의 권유를 받아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랐고, 그로 인해 참수를 통해 순교의 면류관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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