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3일 목록에서 아르메니아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로 순교한 성 에우스트라시오(Eustratius), 성 아욱센시오(Auxent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 성 마르다리오(Mardarius), 성 오레스테스(Orestes)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그들은 고대 ‘아르메니아의 다섯 순교자’로 알려져 있다. 성 에우스트라시오는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되어 먼저 리시아스(Lysias) 총독 치하에서 홀로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그 뒤에 그는 아르메니아의 세바스테(Sebaste, 오늘날 튀르키예 시바스주의 주도인 시바스[Sivas])로 끌려가 아그리콜라우스(Agricolaus) 총독 치하에서 성 오레스테스와 함께 고문을 당하다가 화덕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성 오레스테스는 뜨겁게 달궈진 석쇠 위에 눕혀져 하느님께 순결한 영혼을 바쳤다. 다른 순교자들도 리시아스 총독 치하에서 극심한 고문을 견디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나중에 로마(Roma)로 옮겨져 성 아폴리나리스 성당(Basilica di Sant’Apollinare)에 정중하게 안치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에우스트라시오는 아르메니아의 아라우라카(Arauraka, 오늘날 튀르키예 북동부 시란[Siran] 근처 마을)에서 태어난 명망 있는 귀족 출신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발되어 체포된 후 총독 앞에서 확고한 믿음을 고백하여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충실한 하인인 성 에우제니오와 함께 투옥되었다. 총독은 니코폴리스(오늘날 튀르키예 북동부의 코율히사르[Koyulhisar]에 있었던 고대 도시)로 가면서 성 에우스트라시오를 그의 하인과 함께 고향인 아라우라카로 데려갔는데, 가는 내내 심하게 채찍질을 했다. 성 마르다리오라는 동향 사람이 성 에우스트라시오의 상처를 치료하며 그를 위해 간청했지만, 그 역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한 후 거꾸로 매달려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또한 지역 공동체의 사제였던 성 아욱센시오도 그를 위해 기도한 후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 후 성 에우제니오도 총독 앞으로 끌려가 우상에게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여 오랫동안 매를 맞고 고문당하다가 결국 순교하였다. 성 에우스트라시오는 재판관 앞에서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변호했고,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배교하지 않았다. 병사 중에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던 성 오레스테스가 있었는데, 성 에우스트라시오의 용기에 감동해 신자임을 고백하고 화형대 위에서 순교하였다. 이어 성 에우스트라시오도 불타는 화덕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아르메니아의 다섯 순교자들의 유해는 지역 주교에 의해 아라우라카에 매장되었고, 그들에 대한 공경은 카파도키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8세기 교황 하드리아노 1세(Hadrianus I, 772~795년 재위) 시대에 그들의 유해는 로마로 옮겨져 성 아폴리나리스 성당에 안치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아르메니아에서 성 에우스트라시오, 성 아욱센시오, 성 에우제니오, 성 마르다리오, 성 오레스테스가 순교했다며 그들의 이름만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