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오틸리아(Ottilia, Othilia)의 생애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사실성이 부족한 10세기경의 전기가 있는데, 그에 따르면 성녀 오틸리아는 660년경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 지방 보주산맥(Vosges Mts.)의 오베르하임(Oberheim)에서 알자스의 공작이었던 아버지 아티크(Attich)와 메로빙거 왕가 출신인 어머니 베레스윈드(Bereswinde)의 맏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잔인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데다 딸로 태어난 성녀 오틸리아를 하인들을 시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유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숨길 수 있었고, 아버지의 분노를 피해 한 농부 여성에게 맡겨졌다가 12살 무렵에 지금은 프랑스 지역이 된 발마(Balma, 오늘날 프랑스 동부 브장송[Besancon] 인근의 스위스와 국경 지대에 있는 봄레담[Baume-les-Dames])에 있는 한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녀는 비록 앞을 보지는 못했으나 누구보다 더 밝고 착하게 자랐다. 673년경 성녀 오틸리아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성 에르하르도(Erhardus, 1월 8일)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주교가 세례 중에 바른 성유가 그녀의 눈에 닿자마자 눈이 열려 시력이 온전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화가 풀렸으리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아버지는 어머니의 집안인 메로빙거 왕조와 싸움을 벌이던 중이라 딸을 더는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분노한 아버지는 성녀 오틸리아가 집으로 돌아오도록 도와준 남동생들을 죽이고 그녀를 몽 생트오딜(Mont Sainte-Odile)에 감금하였다. 680년경 성녀 오틸리아의 아버지는 처가인 메로빙거 왕조를 없애려는 음모가 어느 정도 성공해서 권력을 차지하자 그녀를 풀어 주고, 보주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봉우리 중 하나인 몽 생트오딜에 성 베네딕토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설립해 초대 수녀원장이 되도록 관용을 베풀었다. 12세기까지 이 수도원은 호엔부르크 수도원(Hohenburg Abbey)으로 불렸다. 700년경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수녀원 아래 산기슭에 니더뮌스터 수도원(Niedermunster Abbey)을 설립해 원장이 되었다. 두 번째로 설립한 수도원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박 시설과 병원도 함께 지었다. 성녀 오틸리아는 아버지의 변화에 기뻐하며 여생을 이 두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기도와 봉사에 전념하다가 720년경 선종하여 몽 생트오딜 수도원에 묻혔다. 성녀 오틸리아가 세운 수도원은 유럽에서 성공한 수도원 중 하나였다. 그녀는 당시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금지된 것에 맞서 개혁적인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많은 여성 교사들을 초대하여 130명이 넘는 수녀들과 함께 생활하도록 했다. 성녀 오틸리아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를 넘어 독일까지 급속히 퍼져나갔다.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인품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은 이미 오틸리아를 성녀라 부르며 공경하였다. 9세기부터 여러 지역 교회의 성인 호칭 기도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했고 그녀가 묻힌 무덤은 신자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그로 인해 14세기까지 성녀 오틸리아의 유해가 유럽 여러 도시에 나뉘어 모셔졌다. 적어도 16세기 이전부터 성녀 오틸리아는 알자스 지방과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나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져 왔다.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는 공식적으로 성녀 오틸리아를 알자스 지방과 시각장애인 및 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 후 성녀 오틸리아가 살던 몽 생트오딜 수도원의 샘물은 눈병을 치료한다고 여겨지면서 샤르트르(Chartre)와 루르드(Lourdes) 등과 더불어 프랑스에서 유명한 순례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3일 목록에서 알자스 지방에서 성녀 오틸리아 수녀원장을 기념한다고 짧게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프랑스 고대 부르고뉴(Bourgogne)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 영토에서 성녀 오틸리아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설립된 호엔부르크 수도원의 수녀이자 첫 번째 수녀원장이었다고 하며 선종 시기는 7세기경으로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오틸리아는 성 에르하르도 주교에게 세례를 받으면서 눈을 뜨게 된 기적과 관련해서 보통 두 눈이 놓여 있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성녀 오틸리아는 성녀 오딜리아(Odilia), 오딜(Odile), 아딜리아(Adilia)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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