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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네스(Joannes, 또는 요한)는 4세기에 이집트의 부바스티스(Bubastis, 고대 이집트의 도시로 오늘날 나일강 델타 동남부 자가지그[Zagazig] 근처)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그리스어로 ‘난쟁이’(the Dwarf)를 의미하는 ‘콜로보스’(Kolobos, [라] Colobus)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8살이 되었을 때 은수자가 되기 위해 형과 함께 이집트 북부 스케티스(오늘날의 와디 엘 나트룬[Wadi El Natrun])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니트리아(Nitria)의 성 팜보(Pambo, 7월 18일)의 제자가 되었다. 성 요한은 순종의 덕으로 유명한데, 그의 순종과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스승인 성 팜보가 그에게 마른 나무 조각을 주면서 심고 물을 주라고 명했다. 그는 우물까지 거의 20km나 떨어진 곳에 살았지만 매일 물을 주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 나무 조각은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로 자랐다. 성 팜보는 이 나무의 열매를 몇 개 따서 다른 수도승들에게 주며 “순종의 열매를 받아먹어라.”라고 말했다 한다. 성 팜보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스케티스의 성 포이멘(Poemen, 8월 27일)의 제자가 되어 평생 순종과 겸손의 정신으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테오필루스에게 사제품을 받고,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모여온 제자들을 위해 ‘순종의 나무’ 주위에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었다. 그의 제자 중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 아들들의 가정 교사를 지냈던 로마의 부제 성 아르세니오(Arsenius, 5월 8일)도 있었다. 395년에 베르베르인들(Berbers)이 스케티스를 침략해 약탈을 일삼자 성 요한은 제자들과 함께 오늘날의 수에즈(Suez) 근처 콜짐산(Mount Colzim)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Antonius, 1월 17일) 수도원장이 철저한 은수 생활을 위해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으로 생각해 머물렀던 곳이다. 성 요한은 405년경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10월 17일에 그리고 동방 정교회에서는 11월 9일에 축일을 기념하나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그의 이름이 오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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