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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체칠리아(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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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유 체칠리아 (柳 Cecilia)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61-1839년
같은이름 세실리아, 쎄실리아, 유 세실리아, 유 소사, 유 조이, 유세실리아, 유소사, 유조이, 유체칠리아, 카이킬리아, 케킬리아
성인 기본정보

   성녀 유 체칠리아(柳 Caecilia)는 1761년에 강원도 횡성군 학골에서 유항명과 한양 조씨 사이의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는 경기도 용인에서 살 때 전처의 아들 복자 정철상 가롤로(丁哲祥 Carolus)가 있는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丁若鍾 Augustinus)의 후처로 들어가면서 남편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깊은 신심을 보여주었다. 유 체칠리아가 스무살이 되던 1801년 신유년에 서울에서 큰 박해가 일어나서 남편이 옥에 갇혔을 때, 그녀 역시 세 아이와 함께 붙잡혀 들어갔다가 다행히 풀려 나왔다. 하지만 남편은 그해 4월 8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고, 맏아들 정철상 가롤로도 뒤이어 5월 14일에 같은 곳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남편의 순교와 박해로 인해 가산은 모두 몰수되고 그녀는 졸지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어려운 처지에 살길이 막막했던 유 체칠리아는 맏며느리와 열두 살짜리 딸과 여섯 살짜리 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Paulus)와 두 살 아래의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丁情惠 Elisabeth)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의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시아주버니 댁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친척과 집안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비난과 핍박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처의 아들인 정철상 가롤로의 아내인 맏며느리와 손주 그리고 그녀의 맏딸마저 죽고 정하상 바오로와 정정혜 엘리사벳만 남게 되었다.

   집안의 박해에 이어 사랑하는 가족마저 떠나보내며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밤, 유 체칠리아는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나는 천국에 방 여덟 개 있는 집을 하나 지었는데, 그중 다섯은 차고 나머지 셋은 남았소. 그러니 생활이 어렵더라도 참아 받으시오. 그리고 꼭 우리를 만나러 오도록 하시오.” 하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가족 여덟 식구 중에서 이미 다섯이 순교하거나 죽었으니 그 꿈은 꼭 들어맞았다. 그리고 그 꿈은 그녀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주고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 뒤로 유 체칠리아는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자녀들의 교리 교육에 더욱 정성을 쏟았다. 특히 아들 정하상 바오로를 그녀의 먼 친척으로 함경도 무산(茂山)에서 유배 중인 조동섬 유스티노(趙東暹 Justinus)에게 보내어 학문과 소명에 눈을 뜨도록 이끌어주었다.

   정하상 바오로는 장성한 후 신심 깊은 생활을 하며 선교사들을 조선에 영입하기 위한 일을 하며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다. 어머니 유 체칠리아는 막내딸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바느질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곤궁한 살림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니 어떨 때는 그녀가 먹을 것마저도 먹지 않고 내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랫동안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그녀에게는 매우 큰 시련이었다. 아들이 교회 일 때문에 북경으로 떠날 때마다 행여 마지막으로 보는 듯하여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지만 기도로써 참아냈다. 그 후 정하상 바오로가 신부와 주교의 복사일을 보게 되자 유 체칠리아는 아들을 따라다니며 주교댁의 집안일을 도왔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진 뒤로는 줄곧 신심 생활에만 몰두했다. 그래서 열심히 수계하며 밤낮으로 기도문을 외우고 절식을 통해 극기하며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한창일 때 유 체칠리아의 조카 하나가 시골에 집까지 장만해 주며 피신하기를 권했으나, “나는 늘 순교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내 아들 바오로와 함께 순교할 생각이다.” 하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해 7월 11일에 아들이 체포되고, 이어서 7월 19일에 그녀 또한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큰 죄를 지은 국사범처럼 오라로 꽁꽁 묶여 딸과 함께 포청으로 끌려갔다. 그것은 그녀의 집안이 순교자 집안이요, 그녀의 아들이 외국인과 자주 만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며칠 동안 옥에 갇혀 있던 유 체칠리아는 포장 앞으로 끌려나가 신문(訊問)을 받았다. 처음 다섯 번 문초를 당하는 동안에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태형을 230대나 맞았다. 기운이 쇠약한 노인이었지만 유 체칠리아는 끝까지 참아내며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여 주어 형리들을 놀라게 했다. 유 체칠리아는 참수당하기를 바랐으나 나라 법률에 노인에 대한 참수를 금하였기 때문에 재판관들은 때려서 죽이기로 하고 두 번이나 그녀를 불러내어 문초를 거듭하고 위협하며 형벌을 가하였다. 유 체칠리아는 모든 것을 주님의 뜻에 맡기고 고통을 참아냈다. 마침내 기운이 다한 그녀는 옥 바닥에 누워서 마지막으로 “예수 마리아!”를 소리 내어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 이때가 1839년 11월 23일이며, 그녀의 나이 79세로 103위 한국 순교성인 가운데 최고령 순교자였다.

   성녀 유 체칠리아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는 11월 23일에 옥중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23일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서 순교한 성녀 유조이 체칠리아는 과부로서 신앙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했고, 체포된 뒤에는 12번이나 신문을 받고 매질을 당하다가 거의 80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1 - '성 바울로 정하상, 성녀 엘리사벳 정정혜, 성녀 체칠리아 유',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126-175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유소사 체칠리아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40-342쪽.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16장 유 체칠리아', 서울(가톨릭출판사), 2016년, 259-262쪽.
  • 유은희 지음, 이슬은 빛이 되어(순교자의 삶과 신앙) - ‘별처럼 빛나는 신앙의 어머니 성녀 유 체칠리아’, 서울(도서출판 순교의 맥), 2009년, 50-5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유 세실리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793-67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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