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녀 이다는 1140년경 오늘날의 스위스 장크트갈렌(Sankt Gallen) 지방의 키르히베르크(Kirchberg)에서 백작의 딸로 태어나 토겐부르크의 백작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성격이 포악하고 참을성이 없는 남편에게 많은 수모를 당하며 살았다. 한번은 까마귀가 그녀의 결혼반지를 물고 갔는데, 사냥꾼이 둥지에서 반지를 발견해 손에 끼고 있다가 백작에게 들켰다. 백작은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사냥꾼을 죽였고, 아내마저 성의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결백했던 성녀 이다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고, 한적한 동굴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며 하느님께 일생을 헌신하고자 했다. 오랜 세월을 홀로 지내던 중 그녀의 은둔처가 발견되고 남편이 찾아와 오해를 풀고 회개하였으나 성녀 이다는 남편을 용서한 후에도 계속해서 은수자로 살기를 원했다. 회개한 남편은 아내를 위해 베네딕토회의 피싱겐(Fischingen) 수도원 근처에 작은 은둔소를 만들어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여생을 수덕 생활에 전념하며 거룩하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성녀 이다는 까마귀나 사슴과 함께 수녀 복장을 한 모습으로 종종 묘사되는데, 사슴이 그녀를 수도원 성당으로 인도했다는 이야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24년 교황 베네딕토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콘스탄츠(Konstanz) 교구에서 기념하도록 승인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3일 목록에 성녀 이다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오늘날 스위스 땅에 있는 피싱겐 수도원에서 성녀 이다 수녀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