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충청도 어느 양반집의 자제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많이 하여 원님까지 지냈으며, 학식과 교양과 인격을 겸비한 사람으로서 영세한 후부터는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오로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해로 인하여 마을을 떠난 그는 전라도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만년에야 전주의 대성 지방 신리골에 정착하게 되었다. 신리골에 살면서 그는 신자들에게나 비신자들에게나 차별 없이 상대했고, 또 교리를 밝혀 소상하게 가르쳐 주었을 뿐 아니라 예의범절도 잘 가르쳐 주었음으로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전라도 일대에도 박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자, 그는 심부름꾼으로 오사영을 전주로 보내어 정세를 알아보게 하였다. 오사영은 비신자인데다가 고을의 관직에 있는 자였으므로 전주 포청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고, 또 자원하여 신자들을 도와 성심껏 협조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떠난 지 이틀이 지나도 아무런 전갈이 없자 정 바르톨로메우스는 조금은 안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12월 3일 저녁 포졸들이 두 패로 나눠서 한 무리는 성지동 마을로 들어가 조화서 베드로(Petrus)와 그의 아들 조윤호 요셉 그리고 이명서 베드로를 체포하고, 다른 한 무리는 대성 마을로 침입하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근처 주막으로 끌려가 성지동에서 체포된 다른 세 명과 만나게 되었다. 다음날 일곱 사람은 지방 감사의 집까지 압송되어 갔는데, 그들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감사 집에 도착해서는 즉시 창고에 갇혀 있다가 얼마 후 불려나와 고문을 받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정 바르톨로메우스가 유혹에 넘어가 배교할 듯 했었는데, 조화서 베드로가 격려하여 다시 생각을 돌리고 마음을 잡아 평온한 마음으로 순교에 임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정 바르톨로메우스는 순간적이나마 마음이 약해졌음을 참회하면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용감한 마음으로 온갖 고문을 잘 이겨냈다. 그는 전주 숲정이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치명했다. 이때가 1866년 12월 13일이요, 그의 나이는 66세였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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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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