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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도시우스(또는 테오도시오)는 424년경 오늘날 튀르키예에 속한 소아시아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한 마을에서 신심 깊은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독서자로서 교회에서 봉사했고, 어려서부터 성조 아브라함(Abraham)의 모범을 본받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따르려는 열망을 품었다고 한다. 그는 서른 살쯤 되었을 때 집을 떠나서 예루살렘(Jerusalem)으로 순례 여행을 시작했다. 가는 길에 그는 안티오키아(Antiochia, 오늘날 튀르키예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 교외의 텔라니수스(Telanissus, 오늘날의 데이르 세만[Deir Semaan]) 근처 칼라트 세만(Qalaat Semaan)의 높은 기둥 위에서 수행 중인 성 시메온 스틸리테스(Simeon Stylites, 7월 27일)를 찾아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한 후 영적 지도의 필요성을 느껴 롱기누스(Longinus)라는 수도원장을 찾아갔다. 성 테오도시오는 롱기누스의 지도를 받으며 예루살렘의 다윗의 탑 근처에 정착해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스승의 명으로 베들레헴(Bethlehem)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공동체를 담당했으나 고독한 삶을 갈망했던 그는 오래지 않아 그곳을 떠나 산꼭대기의 동굴로 들어가 엄격한 참회와 금욕 생활을 실천하였다. 성 테오도시오의 성덕에 대한 소문을 퍼지면서 몰려오는 제자들을 모두 돌려보낼 수 없게 되자 그는 공동생활을 위한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다. 카파도키아 출신으로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Magnus, 1월 2일)의 수도 규칙에 따라 고독한 은수 생활보다 공동체 생활을 선호했던 그는 베들레헴과 사해 근처 유다 광야에 거대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크고 작은 여러 동굴로 이루어졌고, 성 대 바실리오의 수도 규칙에 따라 공동으로 기도하기 위한 성당과 식당 등이 마련된 라우라(Laura) 형태의 수도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수백 명의 수도승이 살게 되었는데, 그들의 국적과 언어도 다양했다. 그래서 성 테오도시오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아랍인으로 나누어 각 민족을 위한 성당을 짓고 세 가지 언어로 말씀 전례를 거행한 후 그리스어로 성찬례를 봉헌하도록 했다. 또한 수도원 내에 노인과 병자와 정신 질환자를 돌보기 위한 세 개의 병원을 따로 마련해 활동하였다. 493년경에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살루티우스(Salustius)는 성 테오도시오의 친구이자 동향 사람인 성 사바(Sabas, 12월 5일)를 팔레스티나(Palestina)에 있는 모든 독거(獨居) 은둔 수도승들의 원장으로, 성 테오도시오를 공동생활을 하는 모든 수도승의 원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래서 성 테오도시오는 ‘공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으뜸’이란 뜻을 지닌 ‘케노비아르카’라는 별칭을 이름 뒤에 붙여 보통 성 테오도시오 수도원장(Theodosius Coenobiarcha/the Cenobiarch, 또는 the Great)으로 불린다. 성 사바와 성 테오도시오는 서로 다른 수도 전통을 대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화롭게 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 단성설(單性說, Monophysitis) 이단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대하였다. 단성설 이단을 지지하던 동로마제국의 아나스타시우스 황제(491~518년 재위)는 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였다. 성 테오도시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규정한 451년 칼케돈(Chalcedon) 공의회의 신앙을 견지했고, 팔레스티나 전역을 순회하며 사람들에게 정통 신앙을 지키도록 촉구했다. 그로 인해 그는 결국 황제의 명으로 추방당했지만, 518년에 황제가 사망한 후 자신의 수도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성 테오도시오는 생애의 마지막 해에 극심한 병환으로 고통받았지만, 영웅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내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다. 그는 529년 1월 11일 베들레헴에서 100세가 넘는 고령으로 선종하여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가는 길에 머무른 곳으로 알려진 동굴에 묻혔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1일 목록에서 가톨릭 신앙을 위해 큰 고난을 겪은 후 평화롭게 영면한 성 테오도시오 수도원장이 카파도키아의 마가리아숨(Magariassum)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사바의 친구인 성 테오도시오가 유대 지방의 한 은둔처에서 오랫동안 고독한 삶을 살다가 많은 제자를 모아 자신이 세운 수도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실천했고, 가톨릭 신앙을 위해 많은 고난을 겪은 후 백 살의 나이로 그리스도의 품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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