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파비아누스(Fabianus, 또는 파비아노)의 출신이나 교황 이전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교회사가인 카이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쓴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와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alis) 등에는 성 파비아노의 교황 선출과 관련한 신비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는 교황 성 안테로(Anterus, 1월 3일)가 불과 43일 동안 재임하고 선종했을 때 로마가 아닌 다른 지방에 있었다. 당시 성직자와 신자들은 성당에 모여 후임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적임자로 지목된 여러 후보자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고, 나중에 성 파비아노가 그 자리에 참석했을 때조차도 그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흰 비둘기가 날아와 그의 머리에 앉았고, 신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 6월 24일)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습으로 나타났던 모습(마태 3,16)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해 만장일치로 성 파비아노를 교황으로 선출하고(236년 1월 10일) 그 자리에서 안수를 통해 로마의 평신도였던 성 파비아노를 교황좌에 올렸다. 이는 전설적 이야기지만 그가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특별한 지도자였다는 당대 사람들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그 후 성 파비아노 교황은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일곱 구역으로 분할하고, 각 구역의 지도자로 부제를 임명해 공동체를 돌보도록 했다. 그리고 교회를 위협하는 각종 이단 교리의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며 잘못된 교리로 여러 추문을 일으키고 교회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든 누미디아(Numidia,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지명) 람베시스(Lambaessis)의 주교인 프리바투스(Privatus)를 단죄하였다. 그리고 오리게네스(Origenes)의 사제 서품 무효를 재확인한 교황 폰시아노(Pontianus, 8월 13일)의 뜻을 지지하였다. 그는 또한 로마의 칼리스투스 카타콤바 내에 주교들을 위한 묘역을 새로 건설하고, 막시미누스 트락스(235~238년 재위) 황제의 박해로 인해 대립교황인 성 히폴리토(Hippolytus, 8월 13일)와 함께 사르데냐섬(Sardegna Is.)으로 추방되어 사망한 교황 성 폰시아노의 시신을 236년에 이장해 모셨다.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의 박해 이후 교회는 어느 정도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후임 황제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에 나서지 않았고, 필리푸스 아라브스 황제(Philippus Arabs, 244~249년 재위)와 그의 아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로 교황 성 파비아노가 황제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푸스 황제 치하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고통을 받았다. 로마 제국의 정치 · 경제 · 군사적 위기 속에서 그 타개책으로 로마의 전통 종교 부흥을 꾀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광적인 증오심이 일어났다. 필리푸스에 이어 황위에 오른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는 로마 제국의 종교적 기초가 그리스도교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리스도교를 근절하기 위한 박해를 시작했다. 249년 12월 그리스도인에 대한 체포가 시작되고 일곱 차례에 걸친 잔인한 박해가 이어지면서 수많은 신자가 로마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배교하거나 거부하고 순교하는 선택에 놓였다.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 수많은 신자가 순교했는데, 교황 성 파비아노도 초기 순교자 중 한 명으로 250년 1월 20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가 나중에 성 세바스티아노 대성당으로 옮겨 모셨고, 1915년에 그의 이름과 순교자 약어가 적힌 석관이 확인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20일 목록에서 교황 성 파비아노가 데키우스 황제 때 로마에서 순교하여 칼리스투스 묘지에 묻혔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교황이자 순교자인 성 파비아노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평신도에서 교황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신앙과 덕행의 영광스러운 모범을 보이다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후 로마의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칼리스투스 묘지에 안장되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인 성 치프리아노(Cyprianus, 9월 16일)가 교회 행정에 있어서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난 증거를 보여준 성 파비아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고 기록하였다.♣
|
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
2 | [파비아노(1.2 ...] | 성 파비아노 | 주호식 | 2010/02/20 | 756 | 0 |
1 | [파비아노(1.2 ...] |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독서기도|1| | 주호식 | 2006/01/07 | 876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