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페핀(Pepin the Elder 또는 Pepin I)은 580년경 벨기에 브라반트(Brabant)의 란덴에서 공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프랑크 왕국의 왕인 클로타르 2세(Chlothar II)와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그리고 성 시기베르토 3세(Sigibertus III, 2월 1일)의 재임 기간에 프랑크 왕국의 북동쪽 지역을 지배하던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왕국의 살림을 책임지는 궁전장(宮殿長)이었다. 그는 메스(Metz, 오늘날의 프랑스 도시)의 귀족 가문 출신인 성녀 이타(Itta, 5월 8일)와 결혼하여 세 명의 자녀를 낳았다. 복자 페핀은 성 시기베르토 3세 왕을 도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온 나라에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슬라브족의 침입으로부터 변방에 있는 그리스도교 마을을 사수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딸인 성녀 베가(Begga, 12월 17일)를 절친한 친구이자 왕의 고문으로 나중에 메스의 주교가 된 성 아르눌포(Arnulphus, 7월 18일)의 아들 안세기젤(Ansegisel)과 결혼하도록 했는데, 그들의 아들인 에르스탈의 피핀(Pepin of Herstal 또는 Pepin II)이 메로빙거 왕조를 이어 프랑크 왕국의 후반을 지배한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의 시조가 되었다. 복자 페핀은 640년 2월 21일 선종한 후 고향 란덴에 묻혔다가 나중에 니벨레스(Nivelles) 수도원으로 이장해 아내인 성녀 이타와 막내딸인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 3월 17일)와 함께 묻혔다. 그는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시성된 사실은 없으나 여러 옛 순교록에서 복자 또는 성인으로 기록되어 공경을 받았다. 하지만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안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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