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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폴리에욱투스(또는 폴리에욱토)는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시대에 로마 군대의 장교로 복무 중이었다. 그는 아르메니아(Armenia)의 멜리테네(오늘날 튀르키예 중동부의 말라티아[Malatya])에 주둔했는데,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될 무렵 네아르쿠스(Nearchus)라는 그리스도인 친구를 만나 그의 열정적인 신앙과 행동에 큰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개종한 뒤에 아직 세례를 받지는 못했지만 늘 싱글벙글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데, 어느 날 도시 광장으로 가서 로마의 신상 앞에 희생제물을 바치도록 명령하는 황제의 칙령을 과감히 찢어버렸다. 그리고 광장을 지나는 우상들의 행렬을 보자 그 우상들을 땅에 내던져 파괴하였다. 그로 인해 그는 체포되어 심문과 고문을 당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장인의 눈물과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배교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신앙을 고백하였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에서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는데,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직접 목격한 친구이자 동료 군인인 네아르쿠스가 기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4세기 말에 멜리테네에 있는 그의 무덤 위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성당이 세워졌고, 6세기에는 아니키아 율리아나(Anicia Juliana) 공주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를 기념하는 성당을 세웠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3일 목록에서 아르메니아의 멜리테네에서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성 폴리에욱토가 많은 고난은 겪고 순교의 월계관을 얻었다고 전해주었다. 그의 축일은 보통 동방 정교회에는 1월 9일에, 고대 아르메니아 전례력과 시리아 순교록은 1월 7일에,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은 1월 7일과 2월 13일 그리고 비엔(Vienne)의 성 아도(Ado, 12월 16일)의 순교록(Martyrologium Adonis)와 우수아르의 순교록”(Martyrology of Usuard)은 2월 13일에 기념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7일 목록에서 고대 아르메니아의 멜리테네에서 순교한 성 폴리에욱토라는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데키우스 황제의 칙령에 따라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도록 강요당하자 신상을 산산조각 냈고, 그로 인해 많은 고문을 받고 참수되어 자신의 피로써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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