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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로마 순교록” 3월 25일 목록과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성 퀴리누스(또는 퀴리노)는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268~270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에서 체포되어 어두운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 심한 채찍질과 고문을 당한 뒤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그의 시신은 테베레강(Tevere R.)에 버려졌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시신을 오늘날의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Basilica di San Bartolomeo all’Isola) 근처 테베레 섬에서 발견해 폰티아누스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는 최초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여겨지는 로마제국의 아랍인 필리푸스 황제(Philippus Arabs, 244~249년 재위)의 아들로 어려서 어머니와 함께 박해를 피해 도망갔다가 체포되어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 때 감옥에서 참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그는 왕관을 쓰고 홀(scepter)과 군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구형(球形)의 구체(球體, Globus)를 들고 있거나 참수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페르시아의 귀족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뒤 로마를 순례하다가 순교한 성 마리오(Marius)와 성녀 마르타(Martha, 이상 1월 19일) 가족의 순교록에 따르면, 성 퀴리노는 이 부부와 친분이 있었고 그들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성 퀴리노 순교자가 로마의 포르투엔세 가도(Via Portuense)에 있는 폰티아누스(Pontianus)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런데 성 퀴리노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Bayern)의 테게른제 호숫가에 있는 테게른제라는 도시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이는 8세기에 바이에른 지방에 세워진 베네딕토회의 테게른제 수도원과 관계가 있는데, 8세기 중엽 성 퀴리노의 유해가 이 지방으로 옮겨져 구세주 성당에 안치되었고, 테게른제 수도원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게 되었다. 또한 유해를 옮기는 과정에서 치유의 샘이 솟고 성인의 뼈에서 신선한 피가 흘러나오는 등의 기적으로 인해 테게른제는 그 후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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