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칼리메리우스(또는 갈리메리오)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확실한 것은 그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주교였다는 것과 사후에 밀라노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대성당(Basilica di San Calimero)에 그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한 전설에 따르면 그는 그리스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로마(Roma)에서 교황 성 텔레스포로(Telesphorus, 1월 2일)에게 교육을 받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로마에서 사제로 활동하다가 밀라노의 주교인 성 가스트리시아노(Castritianus, 12월 1일)를 보좌했다. 그리고 성 가스트리시아노가 선종한 후 그를 계승하여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포 계곡(Po Valley)의 사도’로 활동하다가 콤모두스 황제(180~192년 재위) 때인 191년경 깊은 우물에 던져져 순교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나중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대성당 중앙제단 아래 안치되었다. 그리고 8세기에 성 갈리메리오의 유해가 대성당 지하실의 우물에서 발견되었을 때 유물함이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로 인해 후대에 그가 많은 이교도에게 세례를 주다가 우물에 던져져 순교했다는 전설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의 전임자인 성 가스트리시아노 주교의 재임 시기는 실제로 3세기로 알려져 있다. 중세에 많은 교구가 사도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기 교구의 역사를 사도 시대와 직접 연결하려 했던 것처럼 밀라노 교구 또한 그러했다고 본다. 성 갈리메리오의 실제 재임 시기는 270~280년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 갈리메리오는 로마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군인이 되었다가 성 파우스티노(Faustinus)와 성 요비타(Jovita, 이상 2월 15일)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밀라노의 주교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밀라노 대성당 내부에 주교 연대기를 적은 대리석 명판에는 그의 재임 기간이 139~192년까지라고 나오지만, 이는 로마 교회와 경쟁하며 밀라노 교회를 더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위한 흔적으로 보인다. 374~397년까지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Ambrosius, 12월 7일)는 자신의 저서에서 8세기 이후 처음 알려진 성 갈리메리오의 순교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성 갈리메리오 주교가 밀라노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사후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대성당이 건립되었으며, 그곳 지하 묘지에 그의 유해가 보관되었다는 것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31일 목록에서 안토니누스 황제(138~161년 재위)의 박해 때 밀라노의 주교인 성 갈리메리오가 체포되어 칼에 찔리고 우물에 던져져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밀라노에서 성 갈리메리오 주교를 기념한다고 짧게 기록할 뿐 순교 사실에 대한 언급 없이 2세기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표기했다. 성 갈리메리오는 칼리메루스(Calimerus, 또는 갈리메로)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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