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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9일 목록에서 페르시아의 귀족 출신인 성 마리우스(또는 마리오)와 그의 아내인 성녀 마르타(Martha) 그리고 두 명의 아들인 성 아우디팍스(Audifax)와 성 아바쿰(Abachum)이 신앙심에 이끌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Claudius Gothicus, 또는 클라우디우스 2세, 268~270년 재위) 황제 시대에 로마(Roma)에 왔다가 여러 가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참수형과 익사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마리오는 의사였으며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준 후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무덤을 참배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로마에 왔다. 두 아들도 의사였기에 로마에서 의술을 더 배우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며 위로하였다.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명령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어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이 순교했는데, 성 마리오의 가족은 사제 요한(Joannes)과 함께 그들의 유해를 수습하여 매장하였다. 그들의 활동은 곧 박해자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중에 체포되어 이교 신들에게 제사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단호히 거부하고 신앙을 증언하였다. 결국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성 마리오와 그의 두 아들은 로마 서쪽 로리움(Lorium) 근처 코르넬리아 가도(Via Cornelia)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한 후 시신마저 불태워졌다. 성녀 마르타는 근처에 있는 연못으로 ‘님파’(Nimpha) 또는 ‘님파에 카타바시’(Nymphae Catabassi)라고 불리는 곳에서 살해당해 우물에 던져졌다. 그 후 펠리치타스(Felicitas)라는 경건한 로마 여인이 반쯤 불에 탄 성 마리오와 두 아들의 시신과 우물에서 건진 성녀 마르타의 시신을 수습해 로리움 근처 코르넬리아 가도의 보체아(Boccea)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 매장하였다. 그날은 1월 20일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무덤 위에는 7세기에 이미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고, 지금도 그 유적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유해 또한 여러 지방으로 퍼져 공경을 받았는데, 크레모나(Cremona)에서는 성 마리오와 그의 두 아들인 성 아우디팍스와 성 아바쿰을 ‘세 명의 성인 의사’로서 공경하였다. 그런데 성 마리오와 그의 가족에 대해서 확실히 알려진 내용은 그들의 이름과 그들이 매장된 장소와 시기 정도이다. 축일도 “로마 순교록”이 1월 19일에 기념하고 있지만, 다른 고대 순교록에서는 그들이 매장된 날인 1월 20일에 축일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후대에 “로마 순교록”에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이미 1월 20일에 로마의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어서 하루 앞당긴 듯하다. 순교 시기도 불확실한데,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통치 중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19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 시기를 4세기경(4세기 초)으로 제시하며, 로마에서 21km 정도 떨어진 코르넬리아 가도에 있는 님파스(Nymphas) 공동묘지에 성 마리오, 성녀 마르타, 성 아우디팍스, 성 아바쿰이 묻혀 있다고만 기록하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아마도 페르시아 출신의 성 마리오 가족이 로마에 상당 기간 머물거나 정착했다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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