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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라우렌티나(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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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리아 라우렌티나 (Maria Laurentine)
축일 10월 17일
성인구분 복녀
신분 수녀,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발랑시엔(Valenciennes)
활동연도 1747-1794년
같은이름 라우렌시나, 라우렌씨나, 로렌틴, 메리, 미르얌, 미리암
성인 기본정보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7일 목록에서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서 성 루도비코(Ludovicus)의 복녀 마리아 나탈리아(Maria Natalia, 또는 마리-조세핀 바노[Marie-Josephine Vanot])와 하느님께 봉헌한 네 명의 동료 동정 순교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우르술라회(Ursulines)의 동정녀들로 1794년 프랑스 혁명 당시 가톨릭 신앙에 대한 증오로 사형 선고를 받고 단두대에 올라 시편 51편(Miserere,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을 낭송했다고 기록하며 그들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네 명의 동료 순교자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성 스타니슬라오(Stanislaus)의 복녀 마리아 라우렌티나(Maria Laurentina, 또는 잔-렌 프린[Jeanne-Reine Prin], 성 베르나르디노(Bernardinus)의 복녀 마리아 우르술라(Maria Ursula, 또는 히아신드-오귀스탱-가브리엘 불라[Hyacinthe-Augustine-Gabrielle Bourla],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의 복녀 마리아 루도비카(Maria Ludovica, 또는 마리-주느비에브 뒤크레[Marie-Genevieve Ducrez]), 예수 성심의 복녀 마리아 아우구스티나(Maria Augustina, 또는 마리-마들렌 데자르뎅[Marie-Madeleine Dejardins]이 그들이다.

   이들 다섯 명의 수녀들은 1794년 10월 23일에 순교한 여섯 명의 수녀들과 함께 프랑스 혁명(1789~1799년) 중에 발랑시엔에서 순교한 11명의 우르술라회 순교자로 불린다. 우르술라회는 수도회의 소명대로 발랑시엔에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혁명의 광풍 속에서 발랑시엔의 수녀들도 수도회와 학교가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수도 생활을 포기할 수 없어서 1792년에 인근 국경을 넘어 벨기에 몽스(Mons)의 우르술라회 수녀원으로 피신하였다. 오스트리아가 발랑시엔을 정복한 1793년에 몽스로 피신했던 수녀들이 돌아와 학교 문을 다시 열었다. 하지만 1794년 6월 오스트리아가 패배하면서 발랑시엔은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다. 이때부터 프랑스 혁명 정부의 공포정치가 절정에 달했다. 당시 발랑시엔 수녀원에는 모두 32명의 수녀가 있었는데, 1794년 8월 31일에서 9월 1일 사이에 혁명군이 입성하면서 모두 체포되었다. 그들은 혁명정부의 법령에 따른 선서를 하고 수녀원을 떠나라는 선택을 강요받았는데, 21명의 수녀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혁명군의 요구대로 선서하고 풀려났다.

   하지만 나머지 11명은 끝까지 수녀원을 지키겠다고 남았고, 정부의 승인 없이 가톨릭 학교를 운영하고 혁명법에서 금지한 수도복을 입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다섯 명의 수녀들이 먼저 심문을 받았는데, 그들은 당당히 자신들은 가톨릭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돌아왔다고 진술하고 10월 16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 10월 17일 사형 집행을 앞두고 그들은 밤새도록 주님의 수난기를 읽고 시편 51편과 시편 130편(De profundis)을 포함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바친 다음, 사형 집행인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서로의 머리카락을 깎아주었다. 그들은 단두대로 향하면서 시편과 테 데움(Te Deum)을 노래하며 영광의 날을 맞이하는 환희 속에 용감하게 걸어갔다. 발랑시엔 주민들은 그들이 수녀이며 한때는 자신들의 스승이었던 사람임을 알고 슬픔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수녀들은 단두대 위에서 천국의 문을 열고 올라갔다. 나머지 여섯 명의 수녀들도 같은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 23일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교황 베네딕토 15세(Benedictus XV)는 1920년 6월 13일 11명의 발랑시엔의 우르술라회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렸다. 그들은 순교한 날에 따라 10월 17일과 10월 23일에 축일을 기념한다.

   복녀 마리아 나탈리아는 1728년 6월 12일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서, 복녀 마리아 라우렌티나는 1747년 7월 9일 발랑시엔에서, 복녀 마리아 우르술라는 1746년 10월 6일 콩데쉬르레스코(Conde-sur-l’Escaut)에서, 복녀 마리아 루도비카는 1756년 9월 27일 콩데쉬르레스코에서, 복녀 마리아 아우구스티나는 1760년 6월 11일 캉브레(Cambrai)에서 태어나 발랑시엔의 우르술라회에 입회하여 수도자로 활동하다가 프랑스 혁명 중에 단두대 위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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