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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파울루스(Paulus, 또는 바오로)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제품을 받고 콘스탄티노플의 첫 번째 대주교가 된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8월 28일)의 비서로 일하다가 337년 연로한 성 알렉산데르 주교가 선종한 후 그의 후임자로 선출되어 주교로 축성되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없었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337~361년 재위)는 아리우스파(Arianism) 주교들만의 회의를 소집해 성 바오로 주교를 단죄하고 추방해버렸다. 이때 그는 서방으로 가서 피난처를 구하고 복귀할 기회를 찾았으나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성 바오로는 로마에서 교황 율리오 1세(Julius I, 4월 12일)를 만나고 대중들의 지지를 받아 341년에 주교좌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리우스파가 다시 그들의 주교를 뽑고 대립하자 황제는 기병대장 헤르모게네스를 보내 성 바오로를 추방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교를 보호하려는 이들이 헤르모게네스의 집을 불태우고 살해하면서 폭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다시 유배되었다가 교황의 지지를 받고 344년 다시 돌아왔다.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유배와 귀환을 반복했던 성 바오로는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의 명으로 다시 유배길에 올랐다. 그는 여러 곳을 거쳐 마침내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작은 마을인 쿠쿠수스(Cucusus, 오늘날 튀르키예 중남부의 곡순[Goksun])에 도착했다. 그곳의 지하 감옥에서 굶어 죽도록 방치된 성 바오로가 6일 뒤에도 살아 있음을 발견한 병사들은 그를 잔인하게 목 졸려 죽이고 말았다. 350년 선종한 그의 시신은 38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년 재위) 때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1226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성 로렌조(San Lorenzo)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7일 목록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고자 추방과 복귀를 반복한 성 바오로 주교가 아리우스파의 계략으로 목이 졸려 사망했음을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6일로 기념일을 옮겨 니케아 신조를 지키다가 아리우스파에 의해 반복적으로 추방되었던 성 바오로 주교가 결국은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해 카파도키아의 곡순으로 추방되어 잔인하게 처형되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는 보통 성 바오로 1세(Paulus I) 또는 성 바오로 증거자(Paulus the Confessor)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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