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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셀라무스(Apselamus, 또는 압셀라모) 또는 발사무스(Balsamus, 또는 발사모)라고 불리는 성 페트루스(Petrus, 또는 베드로)는 4세기 초 팔레스티나(Palestina)에서 순교한 젊은이로 두 가지 전승의 순교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첫째 전승은 그리스어로 작성된 고대 문헌에서 유래한 것으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인 ‘볼랑디스트’(Bollandists)에 의해 편집 간행되는 “성인전집”(聖人傳集, Acta Sanctorum)에 포함된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50km 정도 떨어진 팔레스티나의 고대 도시인 엘레우테로폴리스(Eleutheropolis, 오늘날 이스라엘 중부의 베이트 지브린[Bayt/Beit Jibrin])에서 태어났다. 그는 막시미누스 황제(308~313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요르단강 서안의 헤브론(Hebron)에서 멀지 않은 아울라나(Aulana)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지방 행정관인 세베루스의 심문을 받았다. 성 베드로 발사모는 황제의 칙서대로 로마의 신들을 숭배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온갖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게 신앙을 증언하였다. 그와 세베루스 사이에 오간 긴 심문 내용이 전해지는데, 그 안에서 베드로는 세례명이고 발사모는 가족의 성임을 밝혔다. 심문과 회유와 고문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자 결국 세베루스는 성 베드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판결문의 내용은 “위대한 황제의 칙서에 복종하지 않는 베드로 발사모는 십자가에 달린 어느 사람을 끝까지 옹호하기에 그 사람과 같은 십자가형에 처한다.”였다. 판결 후 즉시 성 베드로는 아울라나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다(311년 1월 3일). 옛 “로마 순교록”은 이러한 전승을 받아들여 1월 3일 목록에서 성 베드로가 아울라나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또 다른 전승은 교회사학자인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 주교가 그의 저서 “팔레스티나의 순교자”(The Martyrs of Palestine)에서 전해준 것으로, 그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카이사레아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309년 1월 11일). 이 두 전승에 등장하는 성 베드로를 서로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후자의 전승을 반영해 1월 11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자의 전승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즉,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에 압셀라모 또는 발사모라고 불리는 성 베드로 순교자가 있었는데, 총독에 의해 초대된 모든 사람이 그 젊은이를 살려주라고 권유했으나 총독은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성 베드로는 불 속에서 녹는 순금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증거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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