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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올드콘(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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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에드워드 올드콘 (Edward Oldcorne)
축일 4월 7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61-1606년
같은이름 애드워드, 에두아르, 에두아르도, 에두아르두스, 에두아르트
성인 기본정보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은 1561년 영국 잉글랜드 북부의 요크(York)에서 벽돌공인 존 올드콘(John Oldcorne)과 메리(Mary)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였고,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 때문에 한동안 감옥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는 요크에서 의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다가 사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프랑스 북동부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공부를 시작한 후 1583년 로마(Roma)의 영국 대학으로 옮겨 학업을 마치고 1587년 8월 23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1588년 8월 15일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영국 선교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품고 있던 그는 그해 11월 존 제라드(John Gerard) 신부와 함께 잉글랜드 노퍽(Norfolk) 인근 해안에 도착해 한동안 런던(London)에서 영국 예수회의 책임자인 헨리 가넷(Henry Garnet) 신부와 함께 지내다가 1589년 3월 우스터(Worcester) 인근의 힌들립 홀(Hindlip Hall)로 파견되었다.

   힌들립 홀은 원래 열심한 가톨릭 신자인 토머스 아빙턴(Thomas Abington)의 소유였으나 그가 감옥에 갇힌 후에 여동생인 도로시(Dorothy)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고, 단지 오빠의 부탁으로 가톨릭 사제들을 돌보고 있었으나 그다지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은 꾸준한 노력으로 그녀의 마음을 바꿔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돕고, 그곳을 본거지로 삼아 16년 정도 활발히 사목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가톨릭을 멀리했던 수많은 국교회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힌들립 홀은 유능한 목수였던 성 니콜라오 오언(Nicolaus Owen, 3월 22일) 수사에 의해 가톨릭 사제들을 위한 은신처(Priest Hole)로 개조되었다.

   1603년 3월 24일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이 죽고 제임스 1세(James I)가 왕위를 계승한 후 가톨릭 신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가톨릭에 대한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1605년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이 발생했다. 탄압을 견디다 못한 몇몇 가톨릭 신자들이 11월 5일 의회 개원일에 맞춰 의사당 지하실에 화약을 묻어 놓아 국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던 계획이었는데, 사전에 발각되어 미수로 그치고 모두 처형당한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가톨릭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더욱 강화되었고, 특별히 예수회를 증오했던 정부는 이 사건과 예수회를 연루시키려고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그래서 당시 영국 예수회의 책임자인 헨리 가넷 신부는 성 니콜라오 오언과 함께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 신부가 머물던 힌들립 홀의 은신처로 피신했다. 그러나 1606년 1월 한 배신자의 밀고로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 신부는 함께 숨어 있던 복자 랄프 애슐리(Ralph Ashley) 수사, 그리고 헨리 가넷 신부와 성 니콜라오 오언 수사와 함께 체포되었다.

   동료들과 함께 우스터를 거쳐 런던탑으로 이송된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은 잔인한 고문을 받고 복자 랄프 애슐리와 함께 우스터로 이송되어 3월 21일 법정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화약 음모 사건’과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예수회 사제로서 영국 내에서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죄로 반역죄 선고를 받은 것이다. 1606년 4월 7일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 신부와 복자 랄프 애슐리는 그들을 배신한 사람을 포함해 두 명의 일행과 함께 우스터 외곽의 레드 힐(Red Hill)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마지막 순간 그들을 배신한 험프리 리틀턴(Humphrey Littleton)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했고,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 신부는 기꺼이 그를 용서하며 영국 왕과 그들을 처형하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바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4월 7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7일 목록에서 영국 우스터에서 예수회 신부인 복자 에드워드 올드콘이 같은 수도회의 복자 랄프 애슐리와 함께 국왕 제임스 1세 암살 음모와 관련한 거짓 비난으로 체포되어 무참히 처형당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에두아르두스 올드콘(Eduardus Oldcorne, 또는 에두아르도 올드콘)으로도 불린다.♣

참고자료

  • 조지프 틸렌다 저, 박병훈 편, 예수회 성인들 - 예수회 고유미사에서 기념하는 성인과 복자의 약전, 서울(도서출판 이냐시오영성연구소), 2014년, 308-310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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