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요한네스 베슈(Joannes Beche, 또는 요한 베슈)라는 가명으로 더 잘 알려진 토마스 마샬(Thomas Marshall)은 잉글랜드 콜체스터(Colchester)의 베슈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Oxford)의 한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1515년에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그는 체스터(Chester)의 성녀 베르부르가(Werburga) 수도원(오늘날의 체스터 주교좌성당)의 제26대 수도원장으로 부임했고, 1530년 6월 10일 콜체스터의 성 요한 세례자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1534년 국왕 헨리 8세(Henry VIII)가 영국에서 교회에 대한 최고 권한이 국왕에게 있다는 수장령(Act of Supremacy)을 반포했을 때, 많은 성직자는 로마 교황청과의 단절을 일시적 문제로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 수도승들은 영적인 문제가 아닌 세속적인 면에서 한시적으로 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수장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왕의 수장령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던 복자 요한 베슈는 1935년 친구이자 평소 흠모하던 성 요한 피셔(John Fisher) 추기경이 6월 22일, 성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7월 6일에 수장령에 서명하기를 거부하고 순교하자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고, 이런 사실은 정부에도 보고되었다. 1538년 11월, 그는 수도원을 몰수하려는 왕실 위원회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왕의 정책에도 반대를 분명히 했다. 결국 그는 반역죄 혐의로 런던탑에 갇혔고, 다시 콜체스터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고 그해 12월 1일 수도원 영지에 세운 교수대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복자 요한 베슈 신부는 1895년 5월 1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12월 1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요한 베슈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2월 1일 목록에서 영국 콜체스터에서 성 베네딕토회 사제인 복자 요한 베슈 수도원장이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을 지키기 위해 헨리 8세 왕 때에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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