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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보 하워드(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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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필립보 하워드 (Philip Howard)
축일 10월 1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평신도,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557-1595년
같은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호워드
성인 기본정보

   성 필리푸스 하워드(Philippus Howard, 또는 필립보 하워드)는 1557년 6월 28일 영국 잉글랜드(England) 지방 런던(London)의 스탠드(Strand)에서 노퍽(Norfolk)의 네 번째 공작인 토마스 하워드(Thomas Howard)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애런들(Arundel)의 12대 백작 헨리 피츠앨런(Henry Fitzalan)의 딸인 메리 피츠앨런(Mary Fitzalan)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왕실 가족과 함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있는 화이트홀 궁(Whitehall Palace)에서 세례를 받고 대부가 되어준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2세(Philip II)의 이름을 따서 필립보로 이름을 지었다. 그는 종교개혁의 격변기에 태어나 14살에 이복동생인 앤 다크르(Anne Dacre)와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인 토마스 하워드 공작은 1569년 10월 1일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에게 대항하는 음모를 꾸몄다가 체포되어 1572년 여왕의 명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다. 그로 인해 성 필립보 하워드는 노퍽의 공작 지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다.

   그는 1574년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세인트 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을 졸업하고 18세경에 평소 선망하던 여왕의 궁전에 들어갔지만, 더 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받았다. 그는 여왕의 박해를 피하고자 어려서부터 가톨릭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아내를 무시하며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580년 외조부가 사망하면서 애런들의 13대 백작이 된 그는 다음 해에 런던탑에서 성 에드문도 캠피언(Edmundus Campion, 12월 1일)과 성 랄프 셔윈(Ralph Sherwin, 12월 1일)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 참여했다가 가톨릭에 대한 깊은 인상과 함께 영적 회심을 경험했다. 그는 이전의 경박한 삶을 포기하고 아내와 화해했으며, 1582년 예수회 신부의 도움으로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였다. 그의 개종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였다. 그는 틈만 나면 신심 서적들을 저술하거나 번역하여 영국 내의 가톨릭 운동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3일씩 단식함으로써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를 바친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종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정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는 여왕에 대항하는 몇몇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자 1583년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해 가택 연금 지시를 내려 실패하고 말았다. 1584년 9월에 다시 잉글랜드를 탈출하려고 했으나 하인의 배신으로 배가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법원에서 막대한 벌금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고 1585년 4월 25일 런던탑에 갇혔다. 잠시 풀려나 자유를 얻기도 했지만, 다시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고 1589년 4월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은 여왕이 서명을 미루면서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는 10여 년을 런던탑 감옥에서 지내며 아내와 자신이 갇힌 뒤에 태어난 아들을 볼 수 있도록 여왕에게 탄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왕은 그에게 ‘한 번만 프로테스탄트 예배에 참석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산도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1595년 10월 19일 주일에 홀로 런던탑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1971년에 애런들 주교좌 성당에 모셔졌고, 애런들 교구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필립보 하워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한 날인 10월 19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19일 목록에서 영국 런던에서 애런들의 백작이자 한 가문의 아버지인 성 필립보 하워드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총애를 잃고 감옥에 갇혔는데, 그곳에서 기도와 참회 생활에 헌신하며 고난과 고문을 이기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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