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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로(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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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라자로 (Lazarus)
축일 11월 1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수도승, 화가, 증거자
활동지역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활동연도 +867년경
같은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조그라포스
성인 기본정보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8세기 말이나 9세기 초에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에 와서 수도승이 되었고, 수도원에서 성화 그리는 법을 배웠다. 그는 수도 생활에 정진하며 기도와 묵상을 통해 얻은 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8세기 초부터 성화상(Icon) 공경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과 파괴령으로 많은 순교자가 나오고 교회의 아름다운 성화상도 많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 8세기 말부터 박해가 완화되고 상화상 공경이 허용되다가 9세기 초에 다시금 성화상 논쟁이 불붙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플에는 성상 파괴론자인 테오필로스 황제(829-842년 재위)가 있었다.

   당시 저명한 화가였던 성 라자로는 테오필로스 황제의 재위 중에 손상된 성화들을 복구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그는 황제 앞으로 끌려 나갔고, 성화를 그렸다는 이유와 자신이 그린 성화상을 직접 파괴하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잔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황제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심한 고문을 가했고, 다시는 성화를 그릴 수 없도록 뜨겁게 달군 인두로 손을 지져 살이 녹고 뼈가 보일 정도로 고통을 주었다. 다행히 성화상을 옹호하던 테오도라 황후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보스포러스(Bosphorus) 해협 인근에 있는 수도원에서 지낼 수 있었다. 842년 테오필로스 황제가 사망하고 테오도라가 여황제로 즉위하면서 성화상 공경이 복원되었다.

   성 라자로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심한 고문으로 상처를 입은 손도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는 파괴된 성화상들을 복원하고 새로운 성화를 그리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고, 테오도라의 아들인 미카엘 3세(842-867년 재위) 황제에 의해 서방 교회와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로마(Roma)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는 867년경 다시금 로마 파견 임무를 수행하던 중 선종했는데,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갈라타(Galata)에 있는 에반데레스(Evanderes) 수도원에 묻혔다. 그리스어로 ‘화가’(Zographos)라는 별명을 이름 뒤에 붙여 성 ‘라자로 조그라포스’라고도 불리는 그의 축일은 가톨릭교회는 2월 23일에 기념해왔다. 옛 “로마 순교록”도 2월 23일 목록에서 그에 대해 기록하였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일치 공의회였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동방 정교회에서 축일로 기념해 온 11월 17일로 옮겨 그의 행적을 전해주었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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