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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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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마로 (Maro)
축일 4월 15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피케눔(Picenum)
활동연도 +연대미상
같은이름 마로네, 마론
성인 기본정보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5일 목록에서 성 마로와 성 에우티케스(Eutyches)와 성 빅토리노(Victorinus)가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Flavia Domitilla, 5월 7일)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폰티아(Pontia/Ponza) 섬으로 추방될 때 함께했고, 네르바 황제(96~98년 재위) 때 돌아와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재위)의 박해 때 발레리아누스 재판관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처형되었다고 전해주었다.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승과 전설이 섞여 있는데, 한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카딸 또는 로마의 집정관인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의 조카딸이라고 한다.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녀는 일찍 부모를 잃고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그리고 어릴 때 이미 삼촌에 의해 로마 원로원 가문의 아우렐리아누스와 결혼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을 통해 황제 가문과 혼맥을 맺고 상당한 재산을 차지하리라 기대했던 아우렐리아누스는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결혼을 거부하자 황제에게 그리스도인으로 고발했고, 결국 폰차 섬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그녀의 그리스도인 친구였던 성 마로와 성 에우티케스와 성 빅토리노가 그녀의 교육을 위해 수행하게 되었고, 아우렐리아누스는 그들에게 어린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자신과 결혼하도록 설득해달라고 했다. 한편 로마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원로원 의원들의 음모로 살해되고 원로원 의원이었던 네르바가 황위에 오른 후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완화하고 종교적 이유로 유배 갔던 이들의 귀환을 허락했다. 그 후 집정관으로 정치적 권력을 얻은 아우렐리아누스는 성 마로와 성 에우티케스와 성 빅토리노가 자기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결혼 실패의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노역형을 선고했다. 성 마로는 로마에서 210km 정도 떨어진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방의 남쪽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피케눔(Picenum, 오늘날의 피체노[Piceno] 지방)의 자기 소유 농장으로 보내 노예처럼 일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성 마로는 복음의 선포자로서 많은 이들을 개종시켜 결국은 참수형을 선고받고 발 디 키엔티(Val di Chienti, 오늘날의 우르비사글리아[Urbisaglia])에서 순교하였다.

   일부 전승은 그들이 로마로 돌아온 후 분노한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성 에우티케스가 매를 맞고 칼에 찔려 순교하였고, 성 빅토리노는 유황 온천에 거꾸로 매달려서 질식사할 때까지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성 마로는 피케눔으로 보내져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한다. 그런데 성 마로의 순교 이야기는 성 네레오(Nereus)와 성 아킬레오(Achilleus, 5월 12일)의 전설과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 성 에우티케스와 성 빅토리노와 함께 공경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순교자는 성 마로뿐이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5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마르케에서 순교한 성 마로의 이름만 기록하고 성 에우티케스와 성 빅토리노의 이름은 삭제하였다. 성 마로는 성 마론(Maron) 또는 성 마로네(Marone)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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