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타르불라(Tarbula, 4월 5일)의 순교를 전해주기에 앞서 그녀의 오빠이자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지방 셀레우키아-크테시폰(이라크 바그다드[Baghdad] 동편 티그리스강 기슭에 있었던 고대 도시로 오늘날의 알마다인[Al-Mada’in])의 주교였던 성 시메온(Simeon, 4월 17일)이 순교한 다음 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페르시아 전역에서 샤푸르 2세 왕(Shapur II, 309~379년 재위)의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참수당한 순교자가 많이 있었다고 적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받은 사람 중에는 왕의 총애를 받았던 환관 성 아자데스(Azades), 성덕과 기적으로 유명한 성 밀레스(Milles) 주교, 성 야코부스(Jacobus, 또는 야고보)라는 이름의 신부와 함께한 성 아쳅시마스(Acepsimas) 주교, 성 아이탈라스(Aithalas)와 성 요셉(Josephus) 신부, 성 아자다네스(Azadanes)와 성 압디에소(Abdiesus) 부제, 성 마레아스(Mareas)와 성 비코르(Bicor) 주교, 그리고 다른 20명의 주교와 약 250명의 성직자가 순교했고, 그 외에도 많은 수도승과 봉헌된 동정녀들이 순교의 영광에 참여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샤푸르 2세 왕이 40여 년 동안 지속한 박해로 인해 순교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 중 일부 이름이 알려진 이들로 실제 그들의 순교 시기와 장소는 다양하다. 성 아쳅시마스 주교는 페르시아 서부 아시리아(Assyria) 지방 흐나이타(Hnaita)의 주교로 샤푸르 2세의 잔혹한 박해 중에 많은 사제와 함께 체포되어 태양신 숭배를 강요당했으나 당당히 거부하고 80살의 고령으로 376년 10월 10일 순교하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모진 고문과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그에 행적은 그와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메소포타미아의 마르티르폴리스(Martyropolis)의 주교인 성 마루타스(Maruthas, 2월 16일)가 기록하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함께 심문을 받고 고문을 당한 60세의 성 아이탈라스와 70세의 성 요셉 신부도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성 아쳅시마스 주교와 함께 순교했다고 알려진 성 야고보 신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교회 미술에서 성 아쳅시마스는 사슬에 묶인 동방교회의 주교로 표현된다. 그는 성 아케시무스(Acesimus, 또는 아체시모)로도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들의 이름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고 4월 5일 목록에서 페르시아의 셀레우키아에서 있었던 성녀 타르불라의 순교를 소개한 후 같은 장소에서 페르시아 왕국의 여러 지역에서 잡혀 온 111명의 남자와 9명의 여자 순교자들을 기념하는데,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불을 숭배하라는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여 샤푸르 2세 왕의 명령으로 화형을 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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