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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가리코이트(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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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미카엘 가리코이트 (Michael Garicoits)
축일 5월 14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증거자,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97-1863년
같은이름 마이클, 미가엘, 미겔, 미구엘, 미키
성인 기본정보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프랑스 피레네 산중의 이바레(Ibarre)라는 한 작은 촌락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프랑스 혁명의 박해를 피해서 온 사제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있었다. 산중생활이 대부분인 그는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이웃의 목장에서 양을 치는 평범한 목동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가끔씩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곤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했던 그의 부모는 아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돈이 없다"는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생팔레(Saint-Palais)의 본당신부를 찾아가서 손자 이야기를 했고, 그 결과 그는 그 본당신부의 주선으로 그 지방의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부모가 학비를 부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본당 사제관이나 주교관에서 일을 해야만 하였다.

   에르(Aire)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닥스(Dax)의 대신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한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비록 시골 목동이었지만 매우 현명하고 또 건강했다. 더욱이 그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자세로 노동과 공부를 했기 때문에 '우리의 알로이시우스 곤자가(Aloysius Gonzaga, 6월 21일)'라는 별명을 들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823년 12월에 바욘(Bayonne) 교구의 사제로 수품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캄보(Cambo)의 보좌신부로서 사제생활을 시작한 그는 예수 성심께 대한 지극한 사랑과 자주 성체를 모시는 관습을 보급함으로써 얀세니즘(Jansenism)과 싸워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의 다음 부임지는 베타람(Betharram)에 있는 교구 신학교였다. 그는 여기서 철학을 가르치다가 원장이 되었다. 그 교구의 주교가 베타람 신학교를 바욘에 있는 신학교와 합치는 결정을 내렸을 때 그는 다른 두 명의 사제들과 함께 그곳에 남아 새로운 봉사를 꿈꾸게 되었다.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제 양성 계획을 구체화시킬 심산으로 동료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툴루즈(Toulouse)로 가서 예수회원인 르블랑(Le Blanc) 신부를 만났는데, 그 신부는 성 미카엘 가리코이트 신부의 마음을 활짝 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격려까지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의 자녀들과 같은 규칙에 근거하는 회헌을 만들고 계획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1838년에 '베타람의 성심 신부회'가 탄생하였다. 이 선교회는 베타람에서 그가 사망한 지 14년 뒤에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그는 192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47년 7월 6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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