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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트리치오(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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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빅트리치오 (Victricius)
축일 8월 7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군인, 주교, 증거자
활동지역 루앙(Rouen)
활동연도 330-407년경
같은이름 빅뜨리치오, 빅뜨리치우스, 빅트리치우스, 빅트리키오, 빅트리키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빅트리키우스(또는 빅트리치오)는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330년경 로마제국의 국경과 접한 갈리아 지역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어서 로마제국의 군인이 된 그는 여러 지역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363년경 프랑스 지방에 주둔할 무렵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에 따른 삶을 살기에 무기를 든 군인의 삶은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호민관 앞에서 무기를 던져버리고 제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호민관은 그를 채찍으로 때리고 감옥에 가두며 다시 무기를 들고 군인으로 복무하도록 고문까지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성 빅트리키우스는 호민관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참수형이 결정되었다.

   놀라(Nola)의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와 “로마 순교록”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후 그에게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다. 먼저 사형을 집행할 사람이 칼로 내려칠 곳을 정하듯 그의 목에 손을 얹는 순간 눈이 멀어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성 빅트리키우스는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세게 조인 사슬이 저절로 느슨해지면서 그가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386년 또는 393년경에 루앙의 주교로 착좌했는데, 그때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어쨌든 그는 벨기에와 프랑스 지역의 이교도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선교사 주교였다. 그는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11월 11일)와 놀라의 성 바울리누스 주교와 친분을 맺고 서신을 교환하기도 했다. 또한 브리튼(Britain)의 주교들 사이의 문제에 대한 중재를 요청받을 정도로 영향력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한때 그는 예수님의 인성(人性)을 부인하는 이단인 라오디케아(Laodicea)의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주교의 추종자라는 혐의를 받기도 했지만, 로마를 방문해 교황 성 인노켄티우스 1세(Innocentius I)의 신임을 확인받고 “Liber Regularum”이라는 중요한 교령을 받아왔다. 그는 396년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 주교에게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와 성 프로타시우스(Protasius) 등의 유해를 받아 모시면서, 이를 축하하고 성인 유해의 신학적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인들의 찬가”(De Laude Sanctorum)를 지었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그의 유일한 작품이다. 그는 407년경 또는 407~417년경에 증거자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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