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충청도 면천 고을에 살던 김대건 신부의 당고모이다. 그녀의 조부 김진후 비오(Pius)는 1814년에 해미에서 순교했고, 부친인 김종한 안드레아(Andreas, 또는 김한현 안드레아)는 1816년에 대구에서 순교했던 순교자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박해를 피하여 이리저리 피해 다녔기에 그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어쨌든 그녀는 단아하고 자선심이 많은 처녀였다. 열일곱 살이 되어서 손연욱 요셉에게 출가하였는데, 단란한 생활 가운데서 여러 자녀를 낳아 모두 하느님을 경외하도록 교육을 시켰다. 그러던 중 1824년에 남편이 체포되어 해미 감옥에서 순교하자, 계속해서 정절을 지킴으로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으로 만족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할 정도로 고행에 전심하였다. 당시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게 되자 신부의 처소를 보살필 사람을 구하였는데 김 테레사가 적임자로 뽑혀 정정혜 엘리사벳과 함께 이를 기쁘게 받아들여 열심히 일하였다. 유 신부가 조선을 떠난 후 김 테레사는 앵베르 주교의 처소를 보살피는 사람으로 일하던 중 박해가 일어났다. 그녀는 위험이 닥쳐왔을 때에도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여러 신자들과 함께 7월 19일에 붙잡혀 오라로 결박을 당한 채 옥에 갇혔다. 김 테레사는 옥에서 고문과 갖가지 괴로움을 당하였지만, 배교하거나 신자들을 고발하거나 선교사들의 피난처를 말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태형 300대의 고통을 꿋꿋한 자세로 참아 받았다. 김 테레사는 여섯 달 동안이나 옥중에서 고초를 겪은 후, 마침내 교수형의 선고를 받았다. 형리들은 그녀의 목에 끈을 감고 양쪽에서 오랫동안 잡아 당겨 끈의 양쪽 끝을 말뚝에 단단히 감아놓았다. 이리하여 김 테레사는 44세를 일기로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으니, 때는 1840년 1월 9일이었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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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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